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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진행)

요한일서 4:13-21 ■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라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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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단지 이론적인 지식이나 교리적 동의로는 증거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삶으로 드러나야 하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은 말로만이 아니라, 성령이 이끄시는 삶에서 증거되어야 합니다.

요한은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고 합니다(13).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실제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우리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추상적인 감동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내주하심은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삶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거하시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제자들에게 오셔서 진리로 인도하셨고, 그들로 하여금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내주하심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확신하게 만드는 실제적인 신앙의 표지입니다.

요한은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라고 말합니다(14). 제자들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따르던 당시에는 십자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성령께서 임하신 후 그들은 구속의 계획을 온전히 깨닫고 담대히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주로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십니다(15). 이는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실체입니다. 성령께서 주신 믿음은 삶을 변화시키며, 그 삶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 고백은 모든 거짓 신앙과 이단적 사상을 분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느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나 교리가 아니라 삶의 실제로 믿어지고 경험되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16).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도 그의 삶 속에 거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면 심판 날에도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17). 이는 우리의 구원이 단지 현재의 위로에 머무르지 않고, 종말론적 소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심판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죄 때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온전히 씻으셨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심판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라는 말씀은(18),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히 감동적인 사건이 아니라 죄의 형벌을 제거한 능력의 사건이었으며, 그 사랑은 죄로부터의 해방을 가능케 했고 심판의 두려움을 몰아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내 삶에 이루어질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한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말합니다(19).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이, 은혜로 주어진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진심으로 체험한 자는 반드시 사랑으로 응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바로 형제 사랑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20).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거짓입니다. 진짜 믿음은 형제를 향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 혼자 간직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반드시 공동체 속에서 흘러가야 하며, 형제를 향한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이 요한 사도가 강조하는 신앙의 실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21). 이 말씀은 단지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자는 반드시 형제를 사랑해야 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닌 순종이며, 믿음의 결단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로는 많이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실천하는 데 인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거든,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라.” 사랑은 신앙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유일한 길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이 세상에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신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나를 외면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증거하도록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세상 가운데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길은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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