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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150:1-6 ■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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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

시편 150편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노래가 끝난 후, 수많은 객석으로 가득 찬 홀에서 일시에 울려 퍼지는 관객들의 박수소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라는 시인의 외침은 성악가의 크고 울림이 있는 노래 소리와 같습니다(1). 흑암 가운데에서 빛과 궁창을 만드시고 모든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의 울림이 오늘도 여전히 모든 만물가운데 깃들어 하나님의 손길을 증거하고 있고, 그 모든 만물을 지으신 뜻대로 운영하시는 하나님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1).

시인은 성소에서, 그리고 궁창에서 찬양하라고 선포합니다. 성소는 성전의 구별된 장소로 언약궤를 두고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룩히 구별된 장소였고 궁창은 우주공간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소와 우주공간, 즉 우리가 하늘이라 부르는 궁창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장소나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는 거룩히 구별된 출입이 제한된 공간이고 우주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의 선포는 성소든지 우주공간이든지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 곧 온 땅과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며 영원하시고 위대하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시인은 그러한 하나님이시기에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2).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그 어떤 신도 흉내 낼 수 없으며 그 어떤 이방의 경전도 담을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것이며, 창조질서를 거슬러 살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 '성소'이며, 위대하신 능력으로 행하신 일의 증거가 '궁창'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삶을 통해 능력을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곧 하나님의 성소이며 능력의 궁창입니다.

시인은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라고 선포합니다(3-5). 나팔은 나팔은 군사를 소집할 때나 백성을 모으고 행진을 명령할 때 그리고 위험이 닥치는 것을 경고할 때도 쓰였습니다. 그 외에도 재림을 알리는 도구이며 제사장이 제사의식을 행할 때에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신호용으로 사용 된 것입니다. 비파와 수금은 현악기로 오늘날 하프와 거문고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또한 소고는 두드리는 타악기로 오늘날 드럼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악기들은 이스라엘이 절기나 축제 때에 기뻐하며 찬송할 때에 사용되었습니다.

시인은 큰 소리 나는 제금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 것을 촉구합니다. 큰 소리 나는 제금은 오늘날 심벌즈와 같이 악기이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은 캐스터네츠와 같은 작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악기입니다. 이처럼 당시 통용되던 악기들이 모두 소환되듯 동원되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그 어떤 악기도 제한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예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악기를 제한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두드리고 부는 악기는 무당들이나 사용하는 것으로 예배의 거룩함을 해치는 악기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선포는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악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음식과 같이 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사람으로 인해 죄가 되고 더러워지는 것이며 음식이나 악기 자체가 더럽거나 저급한 것이 아닙니다. 소고치며 춤추며라는 시인의 표현은 과거의 예배 기준으로는 매우 경박스럽고 경건치 못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모든 악기와 모든 몸의 동작을 통해 주를 찬양하는 것은 나의 온 삶을 다해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겠습니다.”라는 고백과 같은 것으로 성도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이며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찬송가 304장의 가사와 같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큰 고난 속에서 신음할 때 건져주시고 원수의 올무에서 매여 있을 때 구원해주신 것 뿐 아니라, 내가 순간순간 숨 쉬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내 손가락이 움직일 수 있는 것, 내가 발을 내 딛을 수 있는 것, 먹고 입을 수 있는 것,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로 노래를 마무리합니다(6). 하나님의 백성이든지 백성이 아니든지 누구나 그 코에 호흡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할 자격이 있으며 제한 받을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노래를 잘 하는 사람만,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은사가 있는 사람만 찬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의 자격에 대한 조건을 기록해 놓은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내용이 고린도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고전12:4-11). 성령의 은사에는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와 능력 행함과 예언과 영 분별함과 방언과 통역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록된 것 외에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이나 기술이 하나님의 은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기록된 것들은 은사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에 찬양에 관한 것은 은사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기록된 은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기록되지 않는 모든 은사들까지 나열한다 해도 찬양은 은사에 포함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은사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악기와 같습니다. 악기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악기를 들고 연주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이 악기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손에 연주된 삶은 아름다운 곡조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 삶 자체로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손이 없는 자라도 눈이 보이지 않는 자라도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라도, 찬양은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내 영혼의 울림이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자일 수록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위대하심을 찬양할 때에 더 큰 능력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찬양과 하나님의 능력"을 항상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유다를 침략하려는 대적의 세력 앞에서 여호사밧과 이스라엘이 찬양할 때 하늘의 복병이 내려와 대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대하20:22). 찬양은 곧 하나님의 능력을 부르는 강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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