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7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18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19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20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21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2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3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25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27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편 18편은 주제의 흐름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다윗의 특별한 세 개의 고백이 나오는데, 1-19절까지는 “주를 사랑합니다.”, 20-29절까지는 “주를 의지합니다.”, 그리고 30-50까지는 “주를 찬양합니다”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사랑하고 의지하고 노래하는 것, 이 세 개의 단어는 대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가 서로를 의지하며 그들의 일상을 즐겁고 행복한 노래로 채워가는 것 같은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시편 18편은 이처럼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라고 노래합니다(16). 그는 모든 원수들의 손과 자신을 죽이려 하였던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삼하22:1). 그의 찬양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다윗을 붙잡아 주셨음을 말해주는 구원의 증거이며 믿음의 고백입니다. 세상의 높은 권세와 많은 재물이 나를 붙들어 줄 것 같지만 사람에게 영원한 권세도 만족스러운 재물도 없습니다. 악한 권세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보응을 받게 되며 만족하지 못하는 재물은 반드시 타락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많은 물'로 표현한 대적들은 그에게 절망을 주었고 작은 희망도 앗아가 버렸습니다. 거센 물살 앞에서 버틸 수 없으며 모든 것을 일시에 쓸어가 버리듯, 다윗은 그들의 힘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17). 그가 믿는 것은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은 악인에게는 심판을 의인에게는 복을 주신다는 단순한 메시지만을 전달해 주는 말이 아닙니다. 편을 가르고 그 편에 들지 않는 자는 모두 다 심판받는다는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정된 삶으로 초대하시고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믿지 않는 것은 그 초대를 거부하는 것이며,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시편에게 줄곧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를 고백해왔습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2:11-12). 다윗의 이러한 고백들은 단순히 그가 배웠던 것을 암송하듯 뱉어낸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하나의 고백이 그의 삶을 통해 경험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삶 자체가 인정된 삶으로 초대하시고 인도해주시고 영원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힘이 센 원수들이 죽일 듯이 많은 물과 같이 밀려오는 것은 말 그대로 재앙과 같은 일입니다(18).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지가 되어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18-19). 때로는 하나님의 공의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윗이 자신의 삶을 통해 외친 것은 “하나님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라는 항변이 아니라, “주를 사랑하며 주를 의지합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자의 고백입니다. 경험적으로 알지 못하는 자의 믿음은 바람 앞에 갈대와 같습니다.
다윗이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들의 핍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버리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도를 지키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21). 다윗은 이처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를 지키며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의’라고 확신하였고, 그 확신은 재앙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실족하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설 수 있는 이유가 되었습니다(23). 내 자신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불안함과 죽음에 대한 위기 속에서 누구라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연약함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도를 따라 가지 않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이 승리의 길로 인도하실 때까지 끝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를 따라가는 것만이 진정한 의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고통 받는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붙들었던 것을 믿음으로 여기시고 그 분량만큼 반드시 갚아 주실 것입니다(24). 다윗은 자신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시간들이 ‘의롭고 깨끗한 삶’이었다고 고백합니다(21-24). 이것은 자신의 의를 내세우며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도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양보하지 않고 견디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악인들과 같이 불의와 불법으로 행하지 않고 더럽고 악함이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까닭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오직 말씀으로 살겠다고 수 없이 다짐하고 선언하지만 많은 대적과 넘어야 할 담 앞에 서면 주저하고 망설입니다. 말씀도 잃어버리고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세가 무엇인지도 잊지 버린 채, 세상적인 방법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라고 선언합니다(25-26). '자비로움'과 '완전함'은 모두 ‘신실함’이라는 의미로 쓰인 말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신실한 마음과 믿음으로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25).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대부분 죽음이후에 구원에만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삶의 권세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 권세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자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전능하심을 보여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신약 이전의 성도들을 우리는 종교적이고 행위만 강조하는 율법적인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노아나 모세나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 등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순종은 진실한 믿음의 반응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외치며, 하나님을 먼저 경외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하나님의 모든 도를 행할 것을 촉구했습니다(신10:12-16). 그의 촉구는 외식적인 율법의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는 진실 되고 정직한 믿음을 겸비하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의 실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한 마음으로 악한 방법을 쓰는 자에게 하나님은 보응하실 것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수없는 적군들을 만나게 되고 담과 마주치게 됩니다(29). 많은 대적들과 담과 같은 문제 앞에서 번번이 내 방법, 세상의 방법을 쓴다면 나의 모든 삶이 악한 자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둠가운데서 등불을 밝히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28). 비록, 나의 삶에 흑암 같은 짙은 어둠이 드리워지더라도 그 속에서 결코 생명의 빛을 잃지 않게 하시는 분이 나의 하나님입니다(29). 그 믿음이 오늘도 수없는 적군과 넘지 못할 담 앞에서도 담대한 믿음의 선포를 하게 할 것입니다.
<강진 강남교회 새벽이슬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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