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편 묵상(완료)

시편 90:1-17 ■ 기쁨이 되시는 주를 구하게 하소서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4. 11. 16.
728x90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기쁨이 되시는 주를 구하게 하소서

시인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 곧 이스라엘의 거처가 되며, 이스라엘이 머무는 곳이 곧 하나님의 거처가 됨을 고백합니다(1). 자기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처음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무한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이 영원히 안전한 우리의 거처가 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있기 전에 존재하셨고, 우리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 시간을 지으셨으며, 영원토록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 되십니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시며 인생의 존재이유와 목적이 되는 하나님만이 완전한 평안과 안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영원무궁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달리 우리는 티끌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았고 흙으로 돌아갈 약하고 제한된 존재이지만(3:19),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랫동안 산 사람은 므두셀라입니다. 그는 구백육십구 세로 천년 가까이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기록함으로서, 하나님께는 하루와 같은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벧후3:8).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전하였습니다(40:6-8). 시인 또한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4).

인생은 이 땅위에서의 삶만으로 그 가치를 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초라한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탐욕에 젖어 살아가지만 세상에서의 삶은 속히 지나갈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하심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즉 죽음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소망과 가치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하루 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는 하루하루 마음껏 쾌락을 느끼며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라질 이 땅의 모든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세상의 물질과 권세 앞에서 당당하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권력을 잡은 자들이, 혹은 물질적인 풍요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원히 세상에서 살 것처럼 욕심에 욕심을 쌓아가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일순간에 홍수처럼 쓸려갈 것이며, 인생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버리는 꽃과 같다고 고백합니다(5-6).

의로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 앞에서 우리는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인생입니다. 죄 없는 인생은 없으며, 죄를 짓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인생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작은 죄라도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죄로 인해서 고통을 받지 않고 영원한 소망 중에 거할 수 있는 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길어야 팔십 구십을 살면서도 더 얻고 더 모으고 더 높아지고 더 인정받으려는 사람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10). 그러한 인생은 결국 수고와 슬픔 외에는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줄 모르는 미련한 인생들입니다.

시인은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라고 탄식합니다(9).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결국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3:19). 이는 결코 인생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대조적으로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이므로 결국 그분 안에서만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을 거부한 교만한 인생들에 대해서는 진노하십니다(7).

하나님을 떠나 화려하게 살던 사람들을 소멸하시고 그 죄를 모두 드러내십니다. 인생이 이처럼 무상하게 된 것은 사람의 범죄 때문입니다. 모세는 광야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선 연약한 인생들의 한계를 슬픈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이면에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7-11).

인생이 티끌로 돌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므두셀라처럼 아무리 오래 살았던 인생이라 할지라도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필연입니다. 아침에 푸르렀던 잎과 화려한 꽃도 저녁이 되면 시들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5-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인생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무한한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백성이 다시는 진노로 인해 고통 받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시인은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11).

우리에게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그 겸손함은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며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물론, 죄의 삯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셔서 대신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구속의 은혜 안에 들어가는 자마다 의인이 되게 하셨지만, 이는 법적인 의인을 말하며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무결한 인생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선 우리의 모습을 직시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12).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것은 언제까지나 긍휼의 손을 거두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13). 하나님의 두려움을 알고, 사람의 짧은 생애와 비애를 아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할 마음을 갖게 되며 영적 각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아침에 주의 인자로 만족케 하사 일생동안 기쁘고 즐겁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14).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의 참 기쁨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는 마음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세상의 물질이나 권력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매일 매일의 삶을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을 구하며 부어주시는 은혜 안에서만이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돌보셨듯이, 오늘 우리의 삶에 친히 임재하시고 일하시며 지켜주실 것이며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실 것입니다(16).

시인은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17). 이는 시인이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을 시인하고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거처로 여기시고(1), 우리와 끊임없이 소통하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인생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이 아름답고 온전한 존재로 지어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