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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11:1-7 ■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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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세상의 모든 질서와 법칙이 무너지고 혼란스럽습니다(3). 갈수록 악인들은 흉폭 해지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서 바르고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지고 바보같이 느껴지는 세상, 모든 것이 힘과 권력에 의해 좌우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2). 악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의인에게 "너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 날 수 없다"고 야유를 보냅니다. 그리고 어디 한 번 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는 곳으로 도망가보라고 비웃습니다(1).

시편 11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3절에서는 다윗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고, 4-7절에서는 다윗 자신의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동시대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시대적 인식과 가치관은 너무도 다릅니다. 한쪽은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보며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는 자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 백성을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 속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다윗은 안전한 곳에 있었고, 친구들은 곧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두려운 환경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라는 다윗의 고백은 그도 역시 고난 중에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1). 그들이 당한 고난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라는 시인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인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2).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인다는 것”은 계속적인 공격의 상황입니다. 또한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 것”은 악인들의 공격을 예측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바른 자를”이라는 것은 악인들의 공격 이유조차 알 수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악인은 악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라는 한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상황, 그 공격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화살처럼 빠르고 반복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들이 사냥꾼처럼 집요하게 쫓아오는 상황에서 다윗의 친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산으로 피하기를 권면했습니다. 산이라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즉, 너의 직무와 책임감을 벗어 버리고 먼저 살길부터 도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라고 하며, 어디에서나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분이시니 하나님만을 피난처 삼겠다고 합니다(4). 때로는 위기 속에서 눈에 보이는 산과 같은 거대한 세상의 힘과 권세 속에 숨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을 피난처로 삼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친구들은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고 탄식합니다(3). 상황에 대한 친구들의 생각은 “만일 터가 무너지면 그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약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러한 말을 듣습니다. “믿음도 좋지만 장래를 생각해서 지금은 돈을 벌어 두는 것이 좋겠다”라는 말과 같은 경우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친구들과 같이 가정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고, 자녀의 삶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며, 장래의 생활이 무너질 것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평안을 얻으며 그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터’라는 말은 성경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와 같이 삶의 기초를 의미하거나(82:5), 혹은 “애굽에 칼이 임할 것이라 애굽에서 죽임 당한 자들이 엎드러질 때에 구스에 심한 근심이 있을 것이며 애굽의 무리가 잡혀 가며 그 터가 헐릴 것이요”과 같이 나라와 민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겔30:4). 또한 내면적인 의미에서 터는 사회를 받치고 있는 정의와 도덕을 상징하기도 하고, 국가의 법률이나 기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친구들은 다윗에게 “지금은 그 터가 무너진 상태이니 네가 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재는 피하는 것이 최선책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친구들의 말은 다윗을 향한 진심어린 충고입니다. 하지만 그 진심어린 충고가 항상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의 길을 가지 말 것을 진심으로 말했고,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사도 바울을 교회의 성도들은 진심으로 가지 말 것을 권했지만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친구들의 진심어린 권면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피하겠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라는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이 그 어떤 피난처보다 안전한 피난처임을 고백한 것입니다(4).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기백성을 구별하여 알아보시고 살피시고 지키시는 분이십니다(5). 감찰하신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감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구별하여서 살펴보신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성결한 삶을 살고 있는 지를 선하신 뜻을 두시고 지켜보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백성을 살피시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한 다윗은 쫓아오는 악인들을 향해 오히려 반격하듯 선포합니다.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는 다윗의 선포는 결코 무너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보좌에 앉으시어 온 땅과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은 자의 모습니다(6).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연상케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멸망이 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롯의 자녀들까지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창19:14). 우리는 이러한 사람의 모습을 어리석다고 말하겠지만, 그만큼 진리와 거짓을 구별할 수 없는 혼란한 사회, 육체적인 쾌락에 빠져 이성적이고 신앙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세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마실 수밖에 없는 ‘고통의 잔’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불투명해 보이고, 오히려 악하게 살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과 같은 느낌마저 들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계심을 기억하며 끝까지 정직하고 참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7). 하나님의 눈이 인생을 세밀히 바라보며 작정하고 계십니다(4).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그 분을 바라보며 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 분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치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또렷이 알게 될 것입니다(7).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강진 강남교회 새벽이슬묵상 》

www.youtube.com/@user-uj6ln1ip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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