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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103:1-14 ■ 인자와 긍휼을 찬송할 때에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4.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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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6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7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자와 긍휼을 찬송할 때에

시인은 스스로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명령합니다(1). 스스로의 믿음을 새롭게 하기 위한 독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축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하나님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몸과 마음을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온 삶을 다해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 행하심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곡조를 붙여서 부르는 것만이 찬송이 아닙니다. 진정한 찬송은 이웃에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쁘게 알리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나면 자식 자랑부터 시작해서 자기 자랑으로 끝내는 것이 우리들의 대화입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삶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말이 진정한 의미의 찬송이 될 것이며,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함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일이 송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고 합니다(1). 내 속의 불의한 것들이 모두 없어지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만이 넘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거짓된 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처럼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가증한 것들을 섬기고 탐욕을 추구하는 유다백성들을 향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9:3). , 입술에서 거짓이 나오는 것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에게서 돌아서는 것을 배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돌아선 것만으로 배신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배신은 진실한 자에게서 거짓말로 돌아서는 것이고, 정의는 거짓된 자에게서 진실함으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송하는 삶이 되도록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촉구합니다(2).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모든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었던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오늘의 충만한 감사와 찬송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죄를 용서하시어 병을 고쳐주시고, 약속을 기억하시고 긍휼히 여기시어 시인의 삶을 좋은 것으로 채우시고 만족케 해주셨습니다(3-4). 더 나아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겨낼 수 있도록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셨습니다(5).

그러나 좋은 것이라는 것은 나의 입맛에 맞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약은 쓰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것이란 지극히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 내가 생각할 때에는 죽을 만큼 고생스럽고 힘든 것이었지만, 국은 그것으로 인하여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형통하게 되었다면 분명히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 또한, 우리와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죄악 중에 행하며 병에 걸리고 파멸의 상황을 맞이하고 원수로 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을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 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과 같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을 묵상하고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곧 오늘의 내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하고 감사와 찬송이 넘치도록 하는 일입니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오늘을 과거보다 더 잘 살 수 없습니다.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을 공의로 다스리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6). 이스라엘이 압제를 당할 때에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심판하시고 참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범했을 때에는 진노하셨지만, 그들을 심판하실 때에는 오래 참으시며 회개를 촉구하시고 반복적으로 기회를 주셨습니다(7-8). 이는 자기 백성에 대하여 그 인자하심이 가득하신 분이심을 증거합니다.

시인은 그러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인도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차마 하나님을 떠나 죄악 중에 행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명령하듯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합니다. 스스로에게 배신의 길에서 정의의 길로 돌이키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50:22-23).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셨다면 시인과 같이 다시금 믿음의 회복을 위해 스스로에게 촉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악인에 대하여는 죄악을 따라 심판하시지만, 자기 백성에는 끝까지 오래 참으시고 심판을 행하시기를 주저하시며, 고통으로 부르짖는 소리에 돌이켜 다시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10). 때로는 징계하시되 분노로 인한 심판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사랑의 마음으로 경책하실 뿐입니다(9). 이는 곧 하나님과 백성들과의 관계가 계약관계가 아닌 사랑의 관계이며 냉정한 주종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용납해 주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시인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11). 그 분의 인자하심은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에 매어 있는 자기 백성을 위해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대속하시고 구원하실 만큼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용서하시는 분이시지만 죄는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죄를 백성 중에 떨쳐 내어 성결한 신부로서의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그것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셔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죄를 담당하게 하시고, 죄의 결과인 사망을 완전히 제거하시고 영생을 주셨습니다(12).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의 연약함으로는 죄와 사망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시인은 그러한 하나님에 대해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찬송합니다(14).

무조건적인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13). 부모가 자식을 잘 알고 있듯,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잘 아시기에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며, 오래 참으시고 또 오래 참으십니다.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는 때가 있습니다(3:17). 지금 내가 필요로 한 것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내 고난이 끝나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말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은혜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먼지와 같이 보잘것없는 인생의 약함을 아시고 다시 사랑으로 품어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송축할 때가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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