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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102:1-11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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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3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
 4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으므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
 5 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6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7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8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비방하며 내게 대항하여 미칠 듯이 날뛰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9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나이다
10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나이다
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극심한 고통 중엔 절망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에는 기도할 의지도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운을 내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1). 부르짖는 기도는 내 마음의 울분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만이 구원해 주실 분이심을 확신하고 내 모든 마음과 몸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의탁하는 행위입니다.

시인은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2).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았기에 큰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은 시인에게 있어서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어버리시거나 외면하신 것 같기도 합니다. 속히 응답하소서라는 시인의 간절함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시인의 형편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의 간구는 지속된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적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오는 것입니다. 부르짖기까지 온갖 방법을 다 구해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속되는 어려움 속에서 권세자를 찾아가기도 하도, 재물이 있는 자를 찾아가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방법도 찾지 못합니다.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결국 그 누구의 도움도 소용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는 확신이 부르짖게 합니다.

시인은 벗어날 수 없는 구덩이 속에서 고통을 당하며 죽음의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여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라고 탄식합니다(3). 그러나 시인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그러한 때에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 되심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운명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33:2-3). 부르짖으면 아무도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었던 하나님만의 은밀한 방법으로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부르짖는 기도를 하며 음식을 먹는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마음은 풀 같이 말랐습니다. 살이 뼈에 붙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부르짖습니다. 캄캄한 밤 에 아무도 보지 못하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막막한 상황이지만 광야의 어둠 속에서 올빼미가 슬피 울듯이, 하늘문을 여시고 귀를 기울이고 들으실 "나의 하나님"께 밤을 새워가며 끊임없이 부르짖습니다(4-7).

그에게는 더 이상 도울 자도 없고, 곁에서 그 고통을 함께 해줄 자도 없습니다. 모두가 잠이든 밤이지만 시인에게는 밤이 더 이상 안식의 시간이 될 수 없습니다. 그의 양식은 눈물과 재가 되었고, 그의 집은 광야가 되었습니다. 원수들은 시인을 비방하며 미친 듯이 날뛰며 대항하고, 반드시 시인을 죽이리라고 맹세합니다(8-9). 사면초가입니다. 그 어느 곳도 피난처가 될 수 없고, 그 누구도 의지할 사람이 없으며, 그 어떤 길에서도 소생할 수 있는 방법이나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 시인은 먼저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환란 때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지 않는 사람의 입에서는 탄식과 함께 불평과 원망이 쏟아져 나오고 마음에는 절망이나 분노가 가득하게 되지만,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사람은 회개를 통한 믿음의 고백이 나오는 법입니다. 시인의 부르짖음이 소망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때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환란을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10). 연기 같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려고 했고, 풀 같이 온 땅을 차지하려는 야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그러한 삶이 그림자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빛이 비추면 없어져버릴 유한한 인생이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교만했었기에 징계 앞에서 속절없이 시들어가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11).

아모스 선지자는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5:6). 이와 같이 시인은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 볼 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증거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19:23).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한 시대입니다. 어디에서나 말씀을 듣고 읽을 수 있으며, 수많은 주의 종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믿음은 더욱더 가난해지고 초라해졌습니다. 고통과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먼저 생각나고 권력의 줄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진실로 깨닫고, 그 주권자 앞에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사람은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하여도 성령께서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이끌어 주실 때에 부르짖고 회개해야 합니다. 고통 중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르짖지 않는 까닭이며, 죄에서 돌이키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자로서의 삶으로 회복되어 새 생명의 은혜를 덧입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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