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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99:1-9 ■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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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2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6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7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8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라고 노래했던 시인이(93:1), 다시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라고 왕 되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선포합니다(1).

그룹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하던 때에 장막의 성소가운데 모셨던 언약궤의 양쪽에 날개를 편 모양으로 있던 것으로 언약궤를 덮는 덮개였습니다(25:10-22). 속죄소는 뚜껑’, ‘덮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날개 모양의 그룹이 그 위에 있도록 하였습니다(25:18-20; 37:6-9).

그룹날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시는 곳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30:6; 7:89). 그러므로 언약궤의 속죄소(뚜껑) 양쪽에 그룹날개를 두었다는 것은 곧 자기 백성을 만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육체를 입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가운데 강림하셔서 의의 열매로 정하신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정하신 뜻에 따라 주권적으로 택함을 입은 우리는 의의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높이고 예배하며 경배해야 할 대상은 왕이신 하나님이십니다(2).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행하심은 모든 만물을 떨게 할 것이며 땅은 요동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가늠할 수 없고 지혜와 경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다만 온 삶을 통해 드리는 예배와 경배가 신비롭고 경이로운 창조주요 심판주이신 하나님께 합당할 것입니다(3).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라고 하였습니다(10:17).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입니다. 마땅히 하나님만을 섬기며 예배해야 합니다. 내 자신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는 예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성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가운데 공의가 실현되기를 소망하시는 분이시며, 온 땅에 공의를 세우시고도 남을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4). 하나님의 공의는 곧 말씀이시며, 말씀을 먼저 받은 성도는 아픔과 고통이 있는 이 세대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정의와 공평을 통해 드러납니다.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서 나그네와 같이 되지 않도록 정의와 공평을 행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세상 가운데 두시고 세상에서의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할 수 있는 빛의 사명자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도록 정의 공평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어울릴 찬송은 입술의 노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나라와 민족가운데 실현되고, 정의와 공평이 넘치는 세상을 이루어 가도록 노력하는 삶만이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찬송이 될 것입니다. , 진리 안에서 세상과 다른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거룩한 삶을 세워갈 때에,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모든 만민들에게서 고백되어지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진정한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배당에서만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진정한 예배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성도의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8).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죄악을 행하던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지만 회개할 때마다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으며,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공의로운 통치를 실현하고자 하셨습니다(6).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세우신 종들에게 친히 계시하시며 능력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의의 백성으로 구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자기 백성에게서 죄가 있음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희생제물의 대속을 통해 철저히 죄와 분리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으신 분이라는 깊은 믿음과 신뢰가 없이는 회개할 수 없고, 회개 없이는 용서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만 하면 무조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며 그릇된 지식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거룩하신 이름을 기억하며,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서는 허물에 눈을 감아주는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죄 가운데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관계의 회복이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주는 회복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좋은 회복입니다.

용서는 내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할 때에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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