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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106:1-12 ■ 자기 이름을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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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3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6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

시편 106편은 참회의 시면서도 감사와 찬송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인이 이스라엘의 범죄만을 보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하시고 예정하신 목적가운데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반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결국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분 앞에 나아가는 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금껏 인도해주신 그 뜻을 깨닫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책과 절망에서 벗어나 감사와 찬송으로 일어 설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시편 105편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시편 106편은 전적인 은혜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이스라엘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이스라엘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불평과 원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약속에 따라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시인은 그러한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촉구합니다(1). 애굽에서 핍박받고 고통 받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은 그들의 선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이며, 그 언약을 기억하고 신실히 이행하신 인자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무런 공로 없이 그 은혜를 입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에 그들 중에 한 사람도 비틀거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곧 그들의 육체로 이룬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105:37). 칼과 활과 창을 들어 피 흘려 싸우지도 않고 희생자도 없이, 제국으로 번성하던 애굽의 백성들보다 더 많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된 것이었습니다(2).

사랑과 은혜로 베푸신 위대한 구원의 여정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찬송해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평생 감사하며 기쁘게 찬송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의 탐욕은, 늘 지금 가진 것보다 더 가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오히려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음을 한탄하며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의 여정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급하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바랄 수 없는 중에 구원을 받았으나, 그 감격스러운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더 많이 가지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불평하곤 합니다.

감사와 찬송은 입술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은 부름 받은 자의 삶을 통해 부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입술에서 나온 고백과 삶이 다르다면 진정한 찬송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감사와 찬송은 삶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정의와 공의를 잃어버린다면 결국 입술의 찬송은 공허한 것이 될 뿐 아무런 능력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공의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3). 그들을 기억하시고 구원을 위해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4). 그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기뻐하고 받은 복을 감사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자랑하는 삶이되기를 원하십니다(5).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6:14). 우리는 이미 그 복을 받은 자들이며, 아브라함보다 더 큰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신 것들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오히려 애굽에서 누렸던 것들을 더 그리워하며 불평하며 반역했습니다(6).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종 되었던 자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많은 은과 금을 가지고 나오도록 하셨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 가증한 죄악을 행했습니다. 기적과 이적으로 애굽에서 이끄셨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바로의 군사들을 더 두려워했으며, 그들의 앞 길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를 바로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로 여겼습니다(7).

전적인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것은 불평과 원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들의 선함을 보시고 구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그들을 구원하였습니다. 그 구원의 권능을 통해 모든 민족 가운데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증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8).

막다른 길로 인도했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의 눈앞에서 홍해를 꾸짖으셔서 마른 땅이 되게 하시고, 그 가운데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9).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던 바로의 군사들을 홍해 속에 수장시키셔서 하나님만이 만군의 주가 되시며 두려워해야 할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10-11).

이스라엘은 막다른 상황만을 보며 불평하고 원망하였지만, 그 막다른 길은 하나님의 길이 열리는 것을 보게 하셔서 만민들에게 하나님을 자랑케 하시려는 섭리였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찬송하였습니다(12). 불평하던 입술에 찬송을 주셨고, 원망하던 마음에 감사를 주셨습니다.

인생 중에 높임을 받거나 찬양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만이 찬송과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33:2). 오늘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손길이 나를 붙잡고 계십니다. 찬송과 감사로 나아가는 자가 그 분이 살아계신 것과 막다른 길을 형통으로 바꾸시는 이적과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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