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33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34 그들은 여호와께서 멸하라고 말씀하신 그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35 그 이방 나라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36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37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도다
38 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39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러워지니 그들의 행동이 음탕하도다
4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의 유업을 미워하사
41 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렸도다
42 그들이 원수들의 압박을 받고 그들의 수하에 복종하게 되었도다
43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44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
45 그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46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
47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48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
■ 주의 이름을 위하여 긍휼과 사랑으로
이스라엘의 패역은 광야 여정 중에서 뿐만 아니라 약속의 땅에 정착해 살면서도 지속적으로 행해졌습니다. 시인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부끄러운 모습을 고발하듯 서술합니다(32-33).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신 광야를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지만 마실 물이 없습니다(출17:1).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대로” 행하였지만, 즉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인도하신대로 따라갔지만 정작 그곳에는 마실 물이 없게 되자 불평하며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마라에서의 일과(15:23),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불평하였을 때에도(16:1),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전적인 은혜로 채워주셨음을 경험했으면서도 시련이 닥칠 때마다 이스라엘은 점점 더 완악해져만 갔습니다. 그들은 불평과 원망을 넘어 모세에게 항의하고 다투기까지 했습니다(출17:2). 그리고 모든 책임을 지도자인 모세에게 떠넘겼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이미 가나안 거민들을 모두 멸하라고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하며 그들의 음란한 행위를 배우고 따랐습니다(34-35). 그러한 그들의 행위는 스스로의 삶을 올무에 걸리게 하였고(36), 이로 인해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또한 풍요의 신이라 할 수 있는 바알과 몰록을 섬기며 제사하였고, 무죄한 자녀들의 피를 흘려 가나안 우상들의 제물로 바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37-38). 가나안 정복 초기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장 영화로운 시기였던 솔로몬 왕 때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정략결혼을 통해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많은 후궁들과 첩을 거느렸고, 그 결과 여인들이 가져온 우상들의 산당을 짓고 제사하는 등의 가증한 일들을 행하게 되었습니다(왕상11:4). 솔로몬 왕의 타락은 곧 모든 이스라엘의 타락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몰록)과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섬겼습니다(왕상11:5). 아스다롯은 육체적인 사랑과 다산을 위한 우상으로 이 여신 숭배에는 음란한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제사하며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적으로는 거룩한 백성인 것 같으면서도 내적으로 우상숭배를 한 그들에 대하여 음탕한 여인이라고 하셨습니다(39).
불평과 원망은 전염되며, 가증한 우상숭배와 음란은 소리 없이 은밀하게 성도의 삶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분별없이 세상을 대할 때에 우리도 같은 죄악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음행에 대해 진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유업이었지만, 그들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죄악에 맹렬한 불과 같은 심판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40).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적들을 진멸하고 거룩한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통치로 성결한 백성으로 세워져야 할 이스라엘은, 오히려 그들과 혼합결혼을 하고 그들의 우상을 받아들임으로서 그들에게 억압당하고 굴종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통과 죽음뿐이었습니다(41-42).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용서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셨지만, 교묘하게 말씀을 거역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길을 택하여 거룩한 백성이 스스로 비천한 자가 되었습니다(43).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 죄를 주권적으로 판단하시고, 용서와 징계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그들의 죄악을 징계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그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시고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습니다(44-45).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은 칠십 년간 포로 되었던 땅 바벨론에서 바사왕 고레스를 감동시켜 이스라엘을 귀환시키고 여호와를 위한 성전을 건축하게 하는 것으로 실행되고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시려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셨으며, 심판이 결코 언약의 파기가 아니라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이 신실한 백성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는 분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진노하시는 분이시지만,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며 백성을 향한 그 사랑은 끝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항상 근신하고 죄를 돌아보며, 고난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품으신 것은 그들의 의로운 모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심을 통해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모든 나라와 민족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합니다(47). 주의 백성이 그 구원하심을 찬송하고 거룩하신 이름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찬송과 감사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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