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17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18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19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20 이는 나의 대적들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21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22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23 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24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25 나는 또 그들의 비방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26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7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8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29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
30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31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 건지시고 도우시며 구원하소서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습1:14-15).
남유다의 멸망을 선포하였던 스바냐 선지자의 외침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후손으로 왕족입니다. 그런 그가 이토록 비극적이고 처참한 말로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였던 유다의 심판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확정적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저주의 저주와 같은 악인에 대한 다윗의 기도가 스바냐 선지자의 기도를 연상케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연유입니다. 악인의 심판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확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멸망은 자기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악을 행하며 자기 즐거움으로 삼았던 악인의 죄가 그에게 돌아가기를 탄원합니다. 의인과 악인을 판단하시고 주권적인 심판으로 판결하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대적에 대한 그의 기도는 저주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저주는 다윗이 한 것이 아니라 대적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저주를 자초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악인이 저주를 자초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나열합니다. 첫째, 인자를 베풀지 않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16). 즉, 이들에게는 긍휼이 없었습니다. 둘째, 악인들은 저주를 좋아했습니다(17). 의인을 향한 저주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갈 것과 복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셋째, 대적의 악은 습관적이었습니다(18).
마치 사람이 이 옷 저 옷 갈아입은 것처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악을 행한 것이며, 이 악이 생활화되고 습관화 되었습니다. 의인을 향해 한 저주가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자신의 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저주로 인해 당장에 의인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만을 눈으로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한 것입니다. 이들의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죄악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에 기록된 기사를 보면, 남편 엘가나의 마음을 빼앗은 브닌나는 자식이 없었던 본처 한나를 핍박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브닌나와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자식이 없는 한나로서는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성전을 찾아 밤낮으로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녀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눈물은 기쁨으로 바뀌고, 핍박은 존귀로 바뀌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얻은 후에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라고 찬송하였습니다(삼상2:10).
악인에게 죄악은 옷과 같고 허리에 찬 띠와 같습니다. 악인은 그것이 자신에게 힘과 권세와 부귀를 준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결코 벗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큰 죄악의 옷을 수시로 갈아입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에 대하여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19-20, 29).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것은 헛된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악인은 멸하시고 의인을 세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다윗은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라고 기도합니다(21). 이러한 다윗의 기도는 자기 스스로 의롭다고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말한 의인이란 "주의 이름 앞에 엎드린 백성"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의로운 자가 아니라 도리어 악인과 다르지 않는 인생임을 고백하며 다만 주의 이름으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성도"를 의미합니다. 즉, 행위의 의로움이 아닌 "주의 이름으로 의롭다 칭함을 얻은 자"입니다. 다윗은 이처럼 자신의 행위나 모습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인해 구원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습을 가난하고 궁핍하여 중심이 상한 자라고 말하며, 석양 그림자와 같이 지나가며 메뚜기와 같이 불려 가는 힘없는 처지이며, 조금의 금식으로도 육체가 수척해지고 무릎이 흔들릴 만큼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22-25).
이는 악인을 대적할 힘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을 대적할 수 있는 의로움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상하였다"는 것은, 마음의 심한 중상을 입었다는 것으로서, 상처 입은 곳에서 결코 정의와 공평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악인의 행위를 하나님께 의뢰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26).
악인들은 의인을 저주하며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짓입니다. 도리어 저주를 한 악인을 심판하시고 핍박받고 멸시받던 의인을 구원하심으로서, 모든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악인들이 알게 하실 것입니다(27-28).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확신하고 있기에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합니다(28).
창세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야곱의 아들 요셉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까닭 없는 모함을 당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할 뿐 스스로 분노하며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이나, 요셉의 모습은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고 바보스럽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결코 어리석고 미련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악인의 오른쪽에는 사탄이 있지만(6), 자신의 오른쪽에는 하나님께서 계셔서 누가 만왕의 왕이시며 인생의 주권자인지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거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30-31).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의뢰하기를 소망합니다. 주 앞에 겸손히 나아오는 자를 신원하시고 높이시는 분이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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