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편 묵상(완료)

시편 119:1-16 ■ 복을 얻을 온전한 행위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5. 2. 6.
728x90

 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5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2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13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16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복을 얻을 온전한 행위

시인은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 있다고 노래합니다(1). 인생은 연약하여 끊임없이 말씀을 배반하며 죄악을 따라 행합니다. 그것은 이미 이스라엘의 여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속성상 죄성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완벽하게 행하여 의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행위가 온전하다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길을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삶의 모습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의 인격이나 수양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하다 인정함을 받는 것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판단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연약하여 때로는 죄악 가운데 행할지라도 말씀 가운데로 부르실 때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온전한 자라 불러 주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인 다윗의 삶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또한, 신약에서는 온전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회복된 상태"를 의미합니다(5:15). 자신이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행위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2).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에 불의와 불법에서 돌아와 주의 도를 깨닫게 되고 온전한 자로 여김을 얻을 수 있습니다(3).

그러므로 시인은 "내 길을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라고 간구합니다(4-6). "여호와의 증거"들은 곧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은 성경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때를 따라 인자를 베푸시고 은혜와 긍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시인은 인생의 방향이 오직 하나님께 맞추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만이 가능케 하는 일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불완전함을 인정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서로 완벽한 행위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항상 진리의 길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시인은 부끄러움을 당하고 버림받을 수 있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모든 환경과 조건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고립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시인의 반응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과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구하기 전에, 시인은 주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행할 것이며 정직한 마음으로 말씀을 지켜 행할 것을 결단합니다(6-8). 그것도 자신의 의지로 될 수 없음을 알기에 그러한 삶이 되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비록 죄인이며 보잘것없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하나님만이 "의로운 판단"을 내려 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7). 그러한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행할 수 없지만 성실히 행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의로운 인생으로 판단하시는 기준은 이처럼 성실히 행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시인은 말씀대로 행하는 자를 결코 버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세상의 방법만을 구하다 가는 인생은 불쌍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악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 중에 시험과 시련을 주셔서 한계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인생으로 부르십니다. 그 시험과 시련이 피할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완벽히 지켜 행하므로 의로운 자가 되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율법을 지켜 행하려는 노력을 통해 하나님께 속한 인생임을 고백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말씀을 지켜 행하려는 노력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어 승리할 수 있는 길임을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시인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9). 청년의 때는 혈기왕성한 때입니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자신만의 계획을 확신 있게 추진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은 청년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은 오직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따라갈 때에 모든 환경과 조건을 열어주시고, 정하신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다시 한 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전심을 다해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힘쓰겠다고 결단합니다(10).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 앞에서 죄인 된 사람이 완벽하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은 완벽한 인생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입니다. 완벽하지 않고 허점투성이지만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며 살려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완벽한 행위가 아니라 "전심을 기울인 행위"입니다.

보화를 품듯 말씀을 마음에 품고 행할 때에 정욕과 탐욕에 이끌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침 받고 깨닫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12). 말씀을 나의 입술로 선포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13). 그 담대함은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칠 때에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확신과 기쁨은 더욱더 주의 도를 지키기를 즐거워하는 인생으로 세워져 가게 합니다(14).

광야의 이스라엘에게도 말씀은 주어졌지만 시험과 시련 속에서 먼저 불평하고 원망하므로 그 마음이 악해져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말씀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15-16). 시인이 이처럼 말씀을 사모하고 지켜 행하기를 즐겨하는 것은 심판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의 도가 재물보다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얻은 것은 잠깐의 즐거움이지만 말씀이 주는 즐거움은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