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19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구원함을 입은 자의 찬송과 감사의 고백
하나님만이 우리의 능력과 찬송이시며 구원의 실상이 되십니다(14). 시인은 숨통을 조여 오는 대적들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능력과 찬송과 구원이 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권능의 팔로 행하신 하나님 앞에 대적들은 속수무책이었고 그들이 가진 무기와 철병거와 말들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벌떼처럼 둘러싼 대적들로 인해 성 안에 가득했던 고통의 신음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인해 기쁨과 찬송이 가득했고, 온 땅에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진정한 신이심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15-16).
시인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라고 선포합니다(17). 자기 생명에 대한 애착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비록 그의 삶이 불순종과 죄악으로 얼룩져 있었고, 그로인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고통 중에 있었을지라도 긍휼과 사랑을 베푸셔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평생토록 증거 하겠다고 결단한 시인의 믿음은 은혜 안에서 새롭게 지음 받았습니다(18).
시인은 전쟁과 같은 환란의 상황이 대적을 멸하기 위한 진노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바로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채찍이며, 이방 가운데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의 믿음에 나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인은 그러한 하나님 앞에 감사제를 드릴 것을 서원합니다. 시인은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라고 선포합니다(19). 의의 문들은 곧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가 속히 성전에서 예배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감사와 찬송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예배하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시인은 "의의 문들"이 감사제를 드리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모든 백성을 구원하실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로다"라는 시인의 고백은(20),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모든 백성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문지기들은 레위인들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이 전쟁에서 구원받은 왕과 군사들이 감사제를 드리러 입성할 때에 문을 활짝 열어 맞이하고 왕과 군사들은 인자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찬송을 한 목소리로 올려드립니다(21). 그 승리는 열방의 찌꺼기와 같았던 이스라엘이 열방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라고 선포합니다(22). 머릿돌은 건축물이 사라지기 전까지 후손대대로 기념이 되는 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머릿돌과 같이 되었다고 고백한 것은 후손 대대로 버린 돌과 같이 가치 없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기초가 되었음을 감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그러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버림받은 자 같았으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모든 만민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나아오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마21:33-46, 벧전2:4-8).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신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24).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함을 입어 천국백성이 된 성도가 날마다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예배하며 찬송하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죽음 같은 고난은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고, 비천한자로 낮추심은 높이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부귀와 영화가 높은 자리 영광의 자리가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으로 인해 존귀한 자리로 인도되고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은 복된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형통입니다(25). 어떤 것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 앞에 장애물이 될 수 없고, 사망까지도 구원의 자유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구원하심을 경험한 왕이 성전의 문을 통해 들어오자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운집한 백성들 앞에서 그를 축복하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라며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26). 그리고 유일한 구원의 빛이 되신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나아가 그 이름 앞에 합당한 제사를 드릴 것을 소망합니다(27).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만왕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도 모든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습니다(요12:13). 이스라엘의 왕은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의 제단 앞에 짐승으로 희생의 제물을 올렸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만왕의 왕으로 입성하셔서 친히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이는 곧 승리자로 입성하는 왕을 맞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축복이 이스라엘을 향했던 것과 달리, 만왕의 왕시며 대제사장으로서 친히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은 모든 열방을 향해 있음을 증거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축복을 받은 왕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28). 선하시고 인자하신 뜻을 따라 구원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고, 자신은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신하의 자리로 겸손히 내려앉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주신 구원은 이스라엘이 얻은 승리와 같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승리"입니다. 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서로를 축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의 합당한 반응입니다. 모두가 기꺼이 자신의 삶을 희생의 감사 제물로 드리는 복된 결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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