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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116:12-117:2 ■ 나의 서원을 갚으리로다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5.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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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편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117편 
 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나의 서원을 갚으리로다

구원의 은혜는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 없습니다. 다만 구원의 기쁨과 감사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시인은 보답할 길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모든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서원을 갚을 것을 결단합니다(12-14). 서원은 곧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결단한 것을 반드시 이행 할 것을 맹세한 것입니다.

맹세에 관해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6:13). 구약에서 언약을 할 때에는 짐승을 잡아 그 쪼갠 고기 사이를 언약의 당사자가 지나게 하였습니다. 언약을 어긴 대가는 죽음이라 것을 의미합니다. 맹세는 죽음의 언약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5:34). 하지만 맹세에 관한 것이 아니라 헛된 맹세에 관해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람과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속이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원은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께 맹세한 것입니다. 함부로 여겨서도 안 되고,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레위기에서는 이 서원을 자원하여 드리는 제물과 동일하게 여겼습니다. , 자신을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서원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해야 했습니다. 더해도 덜해도 안 되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드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22:23).

시인은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서원했습니다. 서원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약속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 앞에 그 분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한 자발적인 화답이기 때문입니다. 법은 강제적이지만 은혜에 대한 화답은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서원의 이행은 무엇으로도 갚을 길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대가적 행위가 아니라 "새로 얻은 내 삶이 하나님의 것이 되었음을 삶을 통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서원은 매우 신중하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서원한 것을 자기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미루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서원이란 그 자체로 온전한 제물로 드리는 것이므로, 나의 형편과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정확하고 합당하게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함부로 서원한 후, 위기가 지나가자 그 서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위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은 곧 업신여겨서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죄악과 부패가 가득한 인생이 스스로 하나님을 버렸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1:4). 하나님의 구원은 미루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과 긍휼은 하나님의 때에 즉시 베풀어졌습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 이제 그 분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즉시 이행되어야 합니다.

경건한 자기 백성의 죽음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죽음의 결박에서 풀어 자유롭게 해주셨습니다(15-16). 더 이상 어둠의 세력이 주장하지 못하고 사망이 결박하지 못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완전히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사람에게 죽음이란 죄의 결과입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결코 당연한 숙명으로 정하시지 않으셨고, 자기 백성의 죽음을 기뻐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 모든 백성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하신 은혜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위해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서원을 이행할 뿐만 아니라, 감사제를 올리며 그분의 이름을 찬송할 것을 선포합니다(17-19).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백성들 앞에서 감사제를 드리고 서원을 이행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백성의 삶의 중심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셔서 기적 같은 권능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음 같은 상황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을 증거 하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며, 내 삶을 예물로 드릴 것을 서원하는 자를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야곱의 서원은 그러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28:20). 그 제단 위에서 찬송과 감사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그날을 소망하며, 죽음의 상황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인은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라고 선포합니다(117:1). 죽음에서도 구원으로 이끄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며 참 자유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가운데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간절하고 절박한 생명의 울림이며, 그 인자하심과 영원하신 사랑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경험자의 호소입니다(117: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온 땅과 민족이 주의 이름으로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오늘도 그 약속을 믿고 말씀을 붙잡은 자들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주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임하게 하심으로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입게 하셨고, 하늘의 하나님을 찬송하는 나라의 백성으로 세우셨습니다.

오늘 내가 받은 구원의 기쁨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구원의 귀중함과 그 가치를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것을 붙들며 그것에 가치에 두고 있는 삶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송하지 못할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도 증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전하므로 하나님께 새롭게 지음 받은 인생이 되었음을 증거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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