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9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10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11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
시인은 나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므로 사랑의 증거를 보여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1). 시인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평생을 기도자로 살 것을 결단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하심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밀어와 같이 친밀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과 같은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서로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이는 듯한 기도, 그것에 대해 시인은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라는 시인의 고백은 사랑하는 자의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 들어주려는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는 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을 때 응답하셨고, 지금 기도에도 응답하실 분이시며, 앞으로도 모든 기도에 응답하실 그 하나님을 확신하고 있기에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라”고 마음을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기도응답이 항상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응답하십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항상 “Yes”가 되어야만 응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때때로 ”No"가 되면 응답받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한 것도 모든 것을 아시고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오히려 해가 된다고 판단하시면 "No"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우리에게 지금의 무응답은 거절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11). ‘좋은 것’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최선의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잘못 구하는 모든 것도 그대로 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시인은 그러한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는 아무도 구원해 줄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간구에 응답하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는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다짐합니다(2). 시련과 환난 속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그 사랑을 신뢰하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평생에 기도하리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기도는 힘들고 어려울 때만의 기도가 아니라 기도가 일상이 되도록 할 것이라는 의지와 결단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원하는 것을 얻는 기복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성령의 언어’이며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 ‘교제의 특권’입니다. 나의 일상을 기도를 통해 고할 때에, 기도를 통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게 있어 기도란 아쉬울 때만 구하는 수단이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매일 써내려가는 일기가 되어야 합니다.
시인은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라고 고백합니다(3-4). 구하는 자마다 얻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을 고비에 있던 시인을 구원하여 주시고, 사람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사망의 줄로 고통 받을 때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건지셨습니다(5).
시인이 죽음과 같은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입니다. 죽음 앞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생명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께 구하는 것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는 분"이라고 합니다(6). “순진하다”는 사전적으로 “마음에 꾸밈이 없고 순박하고 참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정직한 마음으로 사심 없이 사물과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을 소망하며 나아가는 자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스스로 벗어날 길을 찾고 헛된 지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시도는 더욱더 큰 고통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며, 후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평안이 없고 두렵고 불안하며 초조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망의 어둠 속에서 눈물과 탄식만이 날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찾고 그 분 앞에 기도할 때에 위로와 평안을 얻었으며,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8). 하나님을 찾을 때에 비로소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고통에서 평안으로 옮겨졌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한 시인은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라고 서원합니다(9). 살아갈 동안에 하나님과 함께하며 말씀과 동행할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
평생토록 기도하며 살겠다는 그의 믿음의 결단이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곧 기도의 연속이며, 진정성 있는 기도의 증거가 됩니다. 아무리 울며 기도하여도 그 기도로 인한 결단과 행함이 없다면 그저 마음의 탄식만 쏟아 낸 것입니다. 기도는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지성소에서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깊은 이성적 대화입니다.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도 시인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위를 향해 오히려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10-11).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말하는 자들의 말과 행위에 귀를 기울이거나 그들과 타협하려고 하지 않고 단호하게 믿음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고통의 상황 속에서 이처럼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기도에 응답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지식적인 믿음, 연수와 경륜을 자랑하는 믿음, 내 감정에 따라 스스로 휘둘리는 믿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행하심을 경험하는 믿음이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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