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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119:17-32 ■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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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21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들에서 떠나는 자들을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23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24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26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27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28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29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30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31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인은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곁에 두고 읽고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율법과 증거, 법도와 율례, 계명과 판단, 말씀과 약속 등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단어들이 나열되듯 그의 시에서 고백되어지고 그 고백이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그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심지어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방 받고 있을 때에도 작은 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말씀을 되새긴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라고 간구합니다(17). 의롭게 행하면 칭찬을 받고 악하게 행하면 책망과 징계가 따릅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결코 행위로서 온전함을 이룰 수 없는 연약한 인생임을 알기에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비록 같은 족속과 가족들 중에 있을지라도, 시인은 궁극적으로 인생은 외롭고 힘든 나그네와 같은 삶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19).

그러한 길 위에서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서 말씀의 놀라움을 깨닫게 하고 그 가치를 경험하는 지식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시지 않으면, 인생은 눈은 있어도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영원한 사망 가운데에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외롭고 힘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주실 때에 확신을 붙잡고 견디며 구원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인은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20). 이는 말씀을 지켜 행하다가 지쳐 실족했거나 혹은 실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을 너무 간절히 사모하여 기진맥진 할 정도가 된 것입니다. 너무도 사랑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사랑하는 이의 모습만 보기를 원하게 됩니다. 시인은 말씀을 너무도 사모하였기에 그러한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손을 내밀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없는 시인에게는 오직 주의 계명만이 유일한 구원의 밧줄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22). 마치 "하나님 내가 말씀대로 행했으니 구원의 약속을 지키십시오"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에서 떠나 교만하여 저주를 받은 자들, 계명에서 떠나있는 자들이 시인을 괴롭혔지만 시인은 그들과 같은 방법으로 보복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주의 도를 붙잡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꾸짖어 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21). 하나님께서는 주의 도를 행하며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 자들을 후대하시고, 은혜와 긍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시험과 시련 속에서도, 시인은 주의 도를 붙잡는 자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인을 비방하며 핍박하였지만 조상들의 삶을 통해 증거 된 구원의 말씀이 모든 조롱과 핍박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기에 시인은 실망하지 않고 비방을 비방으로 맞서지 않고 묵묵히 말씀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대적들은 하나님의 도를 붙잡고 가는 주의 종인 시인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계명을 무시하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낙인을 찍어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는 듯이 달려듭니다.

또한, 함정을 파서 시인이 진리의 길에서 넘어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고의적인 불의와 악행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보고만 계시지 않을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의 말씀을 즐거움과 위안으로 삼았으며, 회복과 승리의 길로 인도해 줄 모사로 삼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하고 자신에게 선의를 베푼 사람에게만 호의를 가지고 대하려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악인들의 공격 속에서도 같은 악으로 갚으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길을 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신실한 주의 종으로서의 모습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심판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길 수 있는 자만이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며, 똑같이 악의 길로 빠지지 않고 의의 길로 여전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대적들은 자신들의 자리와 권세를 지키기 위해 악을 행하고 시인을 핍박하였지만, 시인은 그 어떤 권세도 재물도 구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기만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서 버팀목이 되고, 내 삶의 지붕이 되어 모진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도록 늘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소망합니다.

시인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25). 시인의 처절하고 절박한 상황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진토에 붙었다는 것은 이미 죽음의 고통과 같은 상황, 더 나아가 죽은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주의 말씀에 매달렸습니다. 그것만이 꺼져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밑바닥까지 이른 인생, 갈 때까지 가버려 소망이 없는 인생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 선택이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것과 같은 생명의 역사를 맛보게 할 것입니다.

시인은 이미 말씀을 따라 의의 길로 가는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구원해 주셨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26). 그러한 경험은 "하나님만이 구원이시다"는 확신 속에서 여전히 기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말씀의 인도함을 받을 때에 기적을 경험하고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이며, 그 구원의 능력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술로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27-28).

시인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인생, 기쁨이 되는 인생, 구원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삶을 위해 시인은 먼저 거짓된 행위를 버릴 것을 결단하며(29). 주의 말씀 앞에서 성실히 행할 것을 결단합니다(30).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하며 진리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인생을 복되게 하실 것이며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자신의 초라한 모습만을 보는 사람은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행하는 자만이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라는 시인의 고백은(32), 마치 출발선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신호만을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와 같은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준비된 마음과 몸으로 "말씀만 하옵소서 내가 행하리이다"라고 선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실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말씀을 내 힘과 능력으로 삼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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