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2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
시인은 주의 법을 지극히 사랑하여 종일토록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고 고백합니다(97). 주의 말씀은 고난 속에 있는 시인에게 대적들의 간교한 계략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었고, 모든 거짓된 행위를 미워하고 진리를 따라 행할 수 있는 명철을 주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실족하지 않고 믿음으로 끝까지 견딜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떠나 살 수 없었고, 송이 꿀보다 더 단 말씀을 하루 종일 묵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깊은 묵상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했습니다(103-104). 종교적인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위안을 주기는 하지만, 때때로 말씀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며 자신의 삶을 옭아매는 멍에로 여겨 실족하게 합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어도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다면 내 삶 속에서 여전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연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정직하고 성실한 예배자로 삶 속에서 믿음의 고백을 예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은 그것들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에서부터 얻어지며,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할 뿐 아니라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조언들을 따른다고 해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할 때에 세상을 볼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을 얻을 수 있고, 세상에서 겪는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명철을 얻게 됩니다.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라는 시인의 고백은 모든 삶을 뒤로 하고 말씀만 읽고 묵상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묵상이란 망망한 삶의 바다를 헤쳐갈 수 있는 돛을 올리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는 시인의 고백은 일상의 삶 속에서 말씀을 기억하고 모든 일에 주신 말씀을 적용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시인과 같이 종일토록 말씀을 묵상하며 그 속에서 참 기쁨과 평안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은 지혜는 모든 대적들보다 뛰어나게 할 것이며, 명철은 모든 스승보다 나아서 핍박과 미혹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99-101). 이는 곧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스승으로 모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102).
이처럼 날마다 깊은 묵상을 하며 말씀과 동행할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것이며, 깨달은 대로 순종하면 세상을 감당할 지혜와 명철을 얻게 되고, 지혜와 명철은 풍성한 열매를 맛보게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얻게 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의 태산 같은 지식을 능히 이기게 할 것입니다. 종교적인 신앙생활의 연수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묵상과 순종을 통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을 경험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를 통해 산을 옮길만한 하나님의 신비를 드러내게 하실 것입니다.
빛이 어둠을 비추고, 어둠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분별할 수 있게 하듯이, 진리의 말씀이 대적들의 악의를 분별하게 할 것이며 거짓된 행위가 가져다주는 탐욕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은 분명히 다릅니다. 교회생활을 신앙생활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교회생활 또한 세상의 수많은 공동체에서의 생활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하나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며, 깨달은 대로 순종하는 것이 곧 스승 되신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시인의 미래는 캄캄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 어둡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상황에 몰입되지 않고 그러한 상황을 주신 하나님을 주목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신 말씀을 따라 행한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105). 이러한 시인의 고백은 입에서 무미건조하게 나오는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말씀과 동행하며 경험한 구원의 은혜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의 말씀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다고 합니다(107).
말씀만이 모든 환란과 고통에서 자신을 건져낼 수 있는 능력임을 경험한 시인의 신앙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값지고 귀한 것입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등불이 되었던 말씀을 되새기며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었던 시인에게 주의 말씀은, 단순히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는 도구가 아닌 하나님과의 동행이었으며 주권적인 붙드심이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간구합니다(108).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은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라는 성도의 고백입니다. 말씀의 깊은 뜻을 다 알지 못해도 말씀대로 살려는 결단과 노력을 기쁘시게 여기시고 합당한 제물로 열납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의로운 계획이 성취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악인들이 시인을 위협하고 죽이려고 올무를 놓아도 말씀은 그때마다 그러한 올무들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자신을 지키시고 계신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109-111). 시인에게 있어 말씀은 영원한 재산이었으며, 대대로 물려줄 기업이었습니다. 그 외에 어떤 것을 잃는다하여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가정의 참된 재산으로 여기며 자녀들에게 물려 줄 기업으로 여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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