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레위기 묵상(진행)

레위기 10:12-20 ■ 주의 명령 앞에 너무도 부족한 사람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5. 4. 4.
728x90

12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물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제단 곁에서 먹되
13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14 흔든 가슴과 들어올린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15 그 들어올린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물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소득이니라
16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이르되
17 이 속죄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18 그 피는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는 것이었으니 그 제물은 너희가 내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을 것이니라
19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20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주의 명령 앞에 너무도 부족한 사람

성도에게 예배는 단순한 종교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본질적인 삶의 정체성입니다. 매 순간의 시간과 상황이 성결한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서 합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 때에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막연하고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을 통해 감동을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넉넉히 수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은 하나님 앞에 부정함이 됩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나답과 아비후가 죽게 된 사건은 그들이 다른 불을 분향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불순종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성경 곳곳에서 인용되었습니다(16:1, 3:4, 26:61, 대상 24:2). 이는 곧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로서의 성격을 갖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는 다른 불을 담아 온 것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1). 제사장으로서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성소에 나가 분향하게 되었지만(30:7-8), 무슨 일인지 이들은 각기 향로에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한 것입니다. , 이 둘이 각각 향로를 들고 분향했다는 것은 말씀대로 하루에 한 번씩이 아닌 두 번씩 한 것이 됩니다.

이들이 이처럼 각기 향로를 가지고 분향하게 된 것의 이유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셨기 때문입니다(9). 즉 술에 취해 주의 일을 감당하다가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수가 술에 취해 누가 가져가야 할지 모르고 각기 가져간 것일 수도 있지만, 제사장으로서 첫 직무를 감당하던 나답과 아비후가 불필요한 경쟁심리가 술에 취해 발동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일은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아론과 그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하나님께 드린 화제물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누룩을 넣지 말고 제단 곁에서 먹으라고 합니다(12). , 이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처음 수행하던 날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준비했던 번제물 위에 소제물을 함께 불살라 드리고 난 후, 제사장의 몫이 된 소제물의 남은 것을 회막 뜰에서 먹도록 한 것입니다. 특별히 누룩을 넣지 말도록 한 것은 누룩 자체의 부정함 때문이 아니라, 누룩이 죄의 오염과 외식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제물의 남은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 그들의 양식으로 삼게 하셨던 것입니다(13).

또한, 화목제물 중 기름은 여호와께 불살라 드리고 흔들어 요제로 드린 가슴부분들어 올려 거제로 드린 오른쪽 뒷다리 부분은 제사장과 그들 가족의 영원한 소득으로 삼게 하십니다(14-15, 29:24-27).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갈 거룩한 제물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임의로 다른 곳에서 제단 불을 옮겨와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희생이 또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갈 제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나답과 아비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성별하신 제사장이라도 사람의 연약함은 반복적으로 같은 죄를 짓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약속으로 그들이 본분을 잊지 않고 견고히 세워지기를 소망하십니다. 오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이 성취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이 견고히 세워져 가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통해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제사장의 위임식 후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서 처음 드린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 중 제사장의 몫으로 먹을 수 있는 염소고기를 찾았습니다(9:15-21). 일반적인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죄하게 한 속죄제 제물의 고기를 먹지 못하고 진영 바깥 재버리는 곳에서 불살라야 했습니다(6:30). 그러나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서의 첫 임무를 수행하며 드린 속죄제 제물에 대하여는 그 희생제물의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불살라 없애버린 뒤였습니다(16).

모세는 아론과 그의 남은 아들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진노하였습니다(17). 사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속죄제의 제물에 대하여는 기름과 두 콩팥을 불살라 드리고, 가죽과 고기와 똥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라고 하신 명령을 그대로 이행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하나님 앞에 속죄제를 드리거나 회중이 범죄 하여 속죄제를 드릴 때에나(4:12, 4:21), 혹은 제사장의 위임식에서의 속죄제일 때에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태워 없앴던 것이며 (8:17), 제사장으로서 첫 임무를 수행하며 드렸던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제물에 대해서는 모세를 통해 기름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가슴들과 오른쪽 뒷다리를 요제로 드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9:20-21).

요제로 드렸다는 것은 곧 그 제물의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않았다는 것이며 제사장의 몫으로 돌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18). 그러므로 그들이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갈 것을 진영 바깥에서 불살랐다는 것은 나답과 아비후에 이어 또 다시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불순종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모세의 책망을 들은 아론은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라고 대답합니다(19).

아론은 두 아들의 죽음을 보며,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감히 그 제물의 고기를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론의 말이 진심이었습니다. 그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두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제물의 고기를 꺼려서 먹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성결함에 대한 부족함을 깨달아 두렵고 떨린 마음에서 먹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진실하였기에 그 허물을 덮어 주었습니다(20).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이 비록 명령에 따르지 않았으나, 그 중심이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하심이 오늘도 우리를 덮고 계십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