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시편 7편의 표제어는 복잡하고 생소합니다. ‘다윗의 식가욘’, 그리고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식가욘이라는 말이 생소한 것은 성경 어느곳에서도 이와같은 단어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식가욘이란 히브리어의 단어적인 원래의 뜻은 “분명치 않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치 않다는 것은 상황을 분간할 수 없다는 것으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어떤 것이 거짓인지 분별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방황했었던 다윗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즉, 다윗의 식가욘이란 “다윗이 방황할 때, 혹은 혼란을 겪을 때”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표제어에 등장하는 생소한 단어가 있습니다. ‘베냐민의 구시’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구시라는 이름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단서는 구시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서로 추측해 볼 때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에 함께 나온 수많은 이방인 중에 한 사람으로 이스라엘 회중에 들어 온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출12:38). 혹은 베냐민의 구시가 사울을 가리킨다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한 때 자신의 왕이었고 장인이었던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었기에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차명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할 때에 사울의 편에 서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울을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도엑과 같은 사람이나(삼상21:7), 십 사람들과 같이(삼상23:19-20; 26:1) 구시도 맹목적으로 사울을 추종하는 사람으로 까닭 없이 다윗을 미워하고 정죄하며 공격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처럼 표제어 앞 쪽에 ‘다윗의 식가욘’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베냐민의 구시’가 누구였든지 그로 인하여 다윗이 까닭 없이 미움을 받고 공격을 당하며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 매우 혼란한 상태였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러한 상황이 시편 7편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결백을 아뢰며, 만일 자신이 죄악을 행하였거나 까닭 없이 빼앗았다면 자신의 생명이 대적들에 의해 땅에 짓밟히고 먼지 속에 살아도 좋다고 고백합니다(3-5). 이러한 시인의 고백을 그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가 하나도 없는 결백한 사람이라고 하는 주장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논하기 전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의 긴박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라는 그의 탄식은 죽음직전에 내몰린 그의 상황을 짐작하게 합니다(2). 그의 긴박함은 "나를 쫒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라고 외치는 그의 간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1).
우리의 상황이 힘들고 어렵지만 정작 아무런 돌파구도 찾을 수 없을 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자신의 완벽한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3-4), 이렇게 갑작스럽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시련을 겪을 만큼 하나님 앞에 죄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맹렬히 추격해 온 대적들이 사자와 같이 자신을 찢고 뜯을 것이라는 급박한 위기감이 극에 달한 상태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신을 외면하지 말고 "나를 쫒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라고 간절히 구합니다(1).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으면 자신은 대적들에게 찢기고 뜯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2). 우리는 삶 속에서 '죽음과 같은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위기 속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내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악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일어나 악을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6).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의와 성실함으로 악을 고발합니다(8). 시인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대적들이 분노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주무시는 분이 아니라 불꽃같은 눈동자로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시는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깨어서 대적들을 심판하시기를 간구합니다(6).
시인은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신 분으로 하나님 앞에 누구도 악을 의라 속일 수 없으며, 악인은 끊어지고 의인이 세움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9).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고 찢었던 모든 대적들 앞에서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 이는 대적들에게 자신들이 핍박하였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승리자가 되셨음을 확인하게 하신 것입니다(2).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악인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승리를 선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대적들의 권세 앞에 굴복하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실 것임을 믿으며 갑작스러운 위기의 순간에도 “내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고 악인들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10). 하나님께서는 친히 재판장이 되셔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악인을 심판하시되 그 심판은 마치 시위에서 당겨진 화살과 같을 것입니다(12).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악인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셔서 심판을 작정하셨으며,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시행되고 사람이 그 심판을 돌이킬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고 회유하고 위협하겠지만, 자신이 판 웅덩이에 자신이 빠진 것처럼(15),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악인들의 음모는 결국 자신들을 향한 부메랑이 될 것입니다(16). 마치 악인이 죄악을 낳고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은 것처럼 스스로 그들의 죄악의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14).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의로우신 심판자로 자기백성을 도우시고 권리를 찾게 해주시며 모든 고통과 고난을 잊고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17).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음 같은 위기 속에서도 내 하나님이심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선포했습니다(10).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다만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내 마음대로 마음이 지켜지고,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 스스로의 인생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
《강진 강남교회 새벽이슬묵상》
'시편 묵상(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9:1-20 ■ 하나님,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2) | 2023.10.31 |
---|---|
시편 8:1-9 ■ 겸손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0) | 2023.10.27 |
시편 6:1-10 ■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도 (0) | 2023.10.19 |
시편 5:1-12 ■ 아침에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 | 2023.10.17 |
시편 4:1-8 ■ 주님에 대한 강한 신뢰와 확신을 (0) | 2023.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