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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8:1-9 ■ 겸손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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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편의 표제어는 ‘깃딧에 맞춘 노래’라고 합니다. 시편에는 이와 같이 깃딧에 맞춘 노래로 표기된 시편이 81편과, 84편이 있습니다. 이 시편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시편 8편은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깃딧은 원래 포도를 수확하고 발로 밟아 즙을 내는 작업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말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깃딧을 블레셋의 가드에서 사용되었던 리듬악기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깃딧이 수확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든지 악기이든지 평안하고 복된 삶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의 흐름이 우아하고 섬세하며 아름답습니다.

시인은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1). 다윗의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갑작스러운 위의 상황 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듯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에 그 풍경에 도취되어 그 이면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모든 것을 아름답게 지으신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경험하며 그 말씀을 오랫동안 묵상했던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는 높은 지위나 권세를 영광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영광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창조된 순간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꽃과 나무와 강물과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손길을 노래합니다(1). 그러나 죄는 아름다운 창조질서를 파괴하였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탈취하고 다스리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대적들 앞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젖먹이들과 같이 연약한 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권능을 세우셔서 여전히 세상의 주권자 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2).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의 삶이 연약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한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라는 시인의 고백 속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2). ‘대적’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는 전적으로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통해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이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마18:3).

다윗의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라는 고백은 언어의 극치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떠있는 밤하늘을 보며 “두려워서 감히 내려다보지도 못할 만큼 깊은 구덩이와 같은 어둠을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바꾸신 분이 정말 하나님이란 말인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없다면 적막과 두려움만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시인은 이제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을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합니다(4-9).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며 사람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며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4).

우리가 사는 지구와 그리고 지구가 있는 태양계가 온 우주의 중심에 있는지 바깥쪽에 의지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사람을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 중심에 사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깨달음이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신앙고백입니다.

시인은 이제 그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합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5). 사실 시인의 고백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극대화 시킨 것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를’이라고 부르며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라는 표현한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차원이 아닌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객관적 사실임을 말하려는 시인의 의도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피조물인 사람의 위치를 최상으로 높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볼품없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존귀하게 지으셨을 뿐 아니라, 지으신 모든 것을 맡기시고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시인은 그러한 하나님에 대해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6-8). 그러나 그토록 큰 은혜와 권세를 주셨음에도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오존층의 파괴, 그것으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들은 잘못사용하신 인간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만물은 우리 후손에게 주신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노래합니다(9). 1절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봉투기법입니다. 첫 부분과 마지막부분에 동일한 문장을 사용하여 가운데 담겨진 내용을 강조하고 보호하려는 작가의 의도적인 기법입니다. 이것은 곧 “여기 봉투 안에 주의 이름이 온 땅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적힌 봉투를 시인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 삶에 가장 또렷하게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강진 강남교회 새벽묵상 》

www.youtube.com/@user-uj6ln1ip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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