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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74:1-11 ■ 환난, 내게는 멸망인가 기회인가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4.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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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2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3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4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
 5 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6 이제 그들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7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8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9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10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11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

 

환난, 내게는 멸망인가 기회인가

시인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부르짖음은 단순한 고통과 시련의 반응이 아닙니다. 그가 직면한 상황을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한 진노의 연기라고 말한 것은 고통과 시련이 유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과 그들에게 보여주셨던 사랑에 근거하여 구원을 요청합니다(1-3). 그는 원수로 인한 파멸의 상황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시면, 애굽에서 속량하시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시며 함께 하셨던 모든 것이 의미 없는 일이었음을 호소합니다. 이는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시인의 호소는 개인적인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입니다.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 된 내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구하며 탄원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모든 행위는 온전하지 않으며 없어질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은 영원히 불변하며 없어지지 않을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1:14). 이 세상에서 환난과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영광 중에 참여할 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길 힘이 될 것입니다.

시인은 대적들이 자기들의 깃발을 들고 표적을 삼았으며 도끼를 들고 삼림을 베는 사람과 같이 유다를 황폐케 하고 있음을 고발합니다(4-5). 또한, 그들은 성소를 불사르고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혔을 뿐만 아니라, 각 성읍의 회당도 불살랐습니다(4-8).

이것은 바벨론의 침략을 말한 것입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예루살렘과 성전을 불사르고 성벽을 헐었으며, 온갖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왕하25:1-25).

이러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치욕과 아픔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시인은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3). 치욕스러운 환난 속에서 속히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 그는 마치 울부짖는 어린아이가 되어 아버지의 옷깃을 붙잡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붙들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러한 환란 속에서 구원해 줄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죄악이 가득한 유다에 징계를 내리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에 대하여 경고하시며 이미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4:30-31).

슬퍼하며 절망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 모든 시련 속에서 나의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실 것입니다.

시인의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백성들을 구원할 어떤 지원병의 깃발도 보이지 않으며 그들을 인도할 영적 지도자도 없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있었고, 에스겔은 갈대아 땅의 그발 강가 언덕에 사로잡힌 자 중에 있었으며(1:1), 예레미야는 애굽 땅에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도, 제사장의 우림과 둠빔으로도 응답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러한 환난이 얼마나 지속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9).

유다가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된 것은 자신들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던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라고 유다의 죄를 말씀하셨습니다(3:2).

음란과 행악, 그것은 하나님 앞에 마땅히 형벌 받을 죄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며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간음한 신부와 같은 유다를 향해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고 간절히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4:1). 가증한 것을 버리고 언제든지 돌이키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고 자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4:2).

환난을 당하고 있는 유다백성에게는 모든 것이 마침내 끝났다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께는 사랑하는 백성이 죄악에서 돌이켜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지금 환란의 시기를 절망으로만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의 환란은 오히려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시편 74편은 아삽의 시로 되어있지만, 그는 다윗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 바벨론의 침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시드야 때의 바벨론 침략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것은, 후일 그의 후손들이 궁중악사였던 조상 아삽의 이름을 빌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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