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13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14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
15 주께서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시며 주께서 늘 흐르는 강들을 마르게 하셨나이다
16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17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18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19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
20 그 언약을 눈여겨 보소서 무릇 땅의 어두운 곳에 포악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나이다
21 학대 받은 자가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23 주의 대적들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 일어나 주께 항거하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항상 주께 상달되나이다
■ 언약을 눈여겨보소서
유다왕 시드기야 때에 바밸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불에 탔고, 성읍은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B.C. 586년경이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가 결국 멸망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무려 칠십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바사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왕 고레스 때에야 비로소 유다사람들은 본토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서 노래로 섬겼던 사람들 중에는 다윗 왕 시절 궁중악사였던 아삽의 후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시 중의 하나가 바로 시편 74편입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환난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보지 않고, 사탄의 세력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을 건지시려는 구원의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믿음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라고 선포합니다(12). 이는 지금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인해 환난을 당하고 있으나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역사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시인은 ‘용들’과 ‘리워야단’을 언급하며, 그들의 근거지인 “늘 흐르는 강들을 마르게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14-15). 계시록에서 바다는 사탄의 근거지로 묘사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짐승들이 바다에서 올라와 용에게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이로써 성도를 미혹하고 핍박하게 됩니다(계13:1-10).
시인은 그러한 사탄의 세력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여 고통 속에 몰아넣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으로서 사탄의 세력을 깨뜨리고 부수시는 권세를 가지셨음을 증거합니다(13-15).
또한, 용들과 리워야단은 역사적으로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온 애굽을 가리키는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애굽의 세력을 꺾고 백성들을 구원하신 분이심을 증거 한 것입니다.
시인은 그러한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든 땅과 하늘의 유일하신 통치자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선언할 때에, 모든 만물과 역사를 주권하시는 참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께 '기억하소서'를 반복합니다(18, 22). 이는 마치 시인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오묘한 섭리 속으로 거슬러 들어가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반복적으로 간구한 것은, 백성과의 언약에 따라 그들을 인도하시고 건지셨던 것을 기억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언약에 따라 바벨론에 의해서 능욕을 당하고 철저히 파괴되어 버린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지만 반드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하나님이심을 확신합니다(18-20).
하나님 앞에 시인은 겸손히 “언약을 눈여겨 보소서”라고 간청합니다(20). 이는 마치 왕 앞에 허리를 굽혀 나아가는 신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그러한 구원하심을 통해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21).
이러한 시인의 간구와 애통함은 자신들이 대적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또 수치와 능욕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죄악의 틈을 타고 들어 온 원수들로 인해 성소가 파괴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을 받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즉, 시인은 육체의 안위를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영광 받으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시인은 지금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이 비방을 받고 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 당하고 있음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이 시인이 기도하고 있는 첫 번째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 지금 조롱과 수치를 당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이름이 대적들로부터 수치와 조롱을 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성전을 능욕하는 자들의 떠드는 소리는 항상 하늘에 상달될 것입니다(23). 사울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했던 모든 행적들을 내려다보시고 들으셨던 하나님이십니다(행9:4).
시인은 “그 언약을 눈여겨 보소서”라고 하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분명히 합니다(20).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파기하신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즉시 건져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시인의 기도는 언약을 하신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황폐케 된 성전이 회복되고, 다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게 해줄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고 영화롭게 되도록 역사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시인과 같이 오늘 이 땅위에 일어나고 있는 동성애 및 테러와 같은 모든 불법한 것들을 선하신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는 이유를 인생으로서는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성취되며, 이 땅위에서의 싸움은 결국 육체의 싸움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과 성도와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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