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2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3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4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6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7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
시인은 예루살렘성전을 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1). 시인은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라며,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어 가실 예루살렘의 성전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의 경외심은 외형적인 건물의 웅장함이나 아름다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전을 은혜로 충만케 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아름다움을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겔1:28). 시인은 에스겔 선지자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광채와 영광의 형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사랑하신다고 고백합니다(2). 성전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곳입니다(삼하6:12-19). 이는 곧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친히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말하는 성전의 영광은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성전에 임재 하셔서 친히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거하는 모든 곳보다 특별히 성전을 영광스럽게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은 건물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예배하는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은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 즉 예배하는 자들의 모임 상징합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엡4:12). 이는 세상과는 구별된 성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는 성결과 거룩함으로 단장되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그것을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계21:2).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과 그 임재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앞 다투어 높고 웅장하게 세워지는 교회의 건물 속에 거룩함과 성결함이 없다면 참된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교회의 건물은 결국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돌무더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시인의 고백과 같이 이 땅의 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3).
죄악이 가득한 땅에도 하나님의 회복은 있습니다. 시인은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4). 라합은 사악하고 교만한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욥은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이라고 고백하며, 그러한 사악하고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정하신 뜻에 굴복하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욥9:13).
라합은 교만한 애굽을 말한 것입니다(겔32:12). 또한 바벨론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나라를 평정했으며 남유다를 멸망시킨 나라입니다(왕하25:1-7).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한때는 역사를 주름잡던 애굽이나 바벨론이라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라고 하셨습니다(4). '나를 아는 자'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 속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함의 후손으로서 가나안의 남서쪽 지중해에 살았던 블레셋과 가나안의 북서쪽 지중해에 거주하였던 두로와, 애굽의 남쪽에 거하는 검은 피부를 가진 구스까지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고 말씀하십니다(4).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하며 죄악을 행했던 대표적인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하심으로서, 모든 이방민족과 나라들 또한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때는 이러한 나라들에게 침략을 당하고 압제와 고통을 받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애굽과 바벨론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새 예루살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하실 것을 노래합니다(5-6). 불순종과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하나님의 징계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이스라엘의 회복이, 모든 나라들이 주께 돌아오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라고, 모든 민족 가운데 왕이 되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시48:1-2). 교회의 회복은 곧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며 만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오는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막힌 담을 허시고 성전의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혈통과 출신에 관계없이 모든 민족의 근원이시며 주권을 인정하는 자마다 그 분의 성산에서 노래하며 뛰어 놀게 될 것입니다(7). 시인은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6).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모든 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시고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증해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만하였고, 음행과 우상숭배에 물들어 영원한 저주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하나님을 인정하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시고 친밀한 관계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가득하였던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무너졌던 성벽과 성전을 다시 재건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민족가운데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새 예루살렘이 되게 하셔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혔던 담을 허시고, 모든 열방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경배하는 새 백성이 될 수 있도록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 가운데 모든 민족이 함께 주를 찬송하며 뛰며 기뻐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는 혈통과 출신과 민족을 초월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찬송하며 경배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이 교회를 통한 구원에 동참하도록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갈4:2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민족들에게 활짝 열린 새 예루살렘은, 어떤 아들이든지 차별하지 않고 용서하고 품어 주시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입니다.
어떤 이단은 이 구절을 근거로 어머니 하나님을 주장합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계시니 어머니 하나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말한 어머니란, 헌신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며, 그 사랑이 가득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화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는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곳이며, 사망에 종 되었던 자가 오히려 사망을 이기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였습니다(계3:5).
우리 교회가 타락하였던 이전의 이스라엘과 같이 불임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 더 이상 새 생명을 품지 못하고 있는 곳이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새로운 생명을 품지 못하고 양육하지 못했던 교회라도 이제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의 새 예루살렘이 되어 모든 민족이 주께 돌아와 찬송하며 기뻐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전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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