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12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13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 환란 속에서도 주를 확신하고
시인은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1).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가난과 궁핍을 말한 것은 경제적 형편을 말한 것도, 겸손의 표현도 아닙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가치를 두고 살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을 만큼 세상에서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가지지 않았다는 절박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는 대적들에게 쫓겨 다니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가 "하나님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한 것은, 반란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그의 상황을 짐작하게 합니다(14).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 앞에 응답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내 주 하나님"이라고 언급하고 자신을 "주를 의지하는 종"으로 고백합니다(2). 어떤 상황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면 상황에 따라 타협하거나 세상의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된 백성임을 기억한 다윗은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끝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참된 경건과 믿음은 환란 때에 드러납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자기 백성에게 환란을 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워서 주신 것이 아니라 믿음의 진보를 이루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간다면 더 이상 환란을 그 백성 가운데 두시는 것은 무의미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러한 하나님이심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적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러한 상황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대적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대적들을 이길만한 군사력도 양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구하고 있는 것은 군사력도 양식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3). 승리가 군사력이나 충분한 양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하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4).
죄악 된 사람의 속성은 주변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도 잡으려 하듯이, 세상에서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잡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환란 때에 자기 백성이 오히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들이 당하는 환란을 보며 아버지의 마음은 차라리 그 환란을 자신이 당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기 백성이 손을 내밀고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구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것은 곧 "내게 있어 하나님 아버지만이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다"라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백성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악을 오히려 선한 역사로 바꾸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대적들에게 쫓김을 당하고 있는 고통의 순간을 영광의 자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자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고통이나 환란을 겪지 않도록 평온하게 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아니라, 환란을 통해서 멸망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믿음의 성숙함을 이루어 가게 하시며, 고통의 순간을 오히려 영광과 기쁨의 자리로 바꾸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며 긍휼하심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나의 환란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라고 간구합니다(7). 인자는 언약관계에 있는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 간구할 수 있었고,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라고 부르짖을 수 있었습니다(2).
진실한 간구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구원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만이 모든 신들 중에 유일하신 분이시며 모든 민족이 경배하고 영광을 돌릴만한 분이며, 기적을 통해 위대한 역사를 세워 가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8-10).
세상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부르짖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즉, 세상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결코 하나님 앞에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특권이며 은혜입니다. 또한 구덩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그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자기 백성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사2:3).
나아갈 길을 구하며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뚜렷하게 그 길을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확실히 붙잡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하는 그의 기도는, 아직 고통 속에서 있으나 이미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고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는 그의 믿음이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믿음이란 공적을 쌓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자가 약속하신 구원을 확신하며 그 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련의 장소에서 붙잡아야 할 것은 물질도, 권세도 아니며 오직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다윗은 모든 만물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찬송합니다(12). 그러나 그가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는 것은 모든 환란이 물러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 그의 삶은 환란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광을 돌리며 찬송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미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건져주셨기 때문입니다(13).
우리에게 진정한 고통이란 현실 속에서 당하는 어려움들이 아닙니다. 그 고통 속에서 구원에 대한 소망을 찾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고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유일한 구원자 되신 하나님을 확신하며 그 고통 속에서 이미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한 확신과 마음의 평안이 어떤 순간에도 주의 도를 따라 행하며 진리가운데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겠다는 신앙적 결단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11). 이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자신이 확신과 신뢰를 가지고 주의 도를 행하며 나아갈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듣도록 찬송하며 영광을 돌릴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
어쩌면 다윗에게 있어 진정한 고통과 두려움은 대적들의 추적이 아니라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란이 크고 고통이 깊을수록 하나님께서는 백성된 자들의 마음에 구원의 확신을 선명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앞서가셔서 대적과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대적에게는 수치를,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그 하나님께만 의뢰하는 자신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14-17). 이러한 다윗의 기도는 자신을 환란에서 건지실 하나님을 확신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로 더욱더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언약을 확신하는 자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막연한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고, 그 진리를 따라 마음을 다하여 행할 것을 결단하고 있습니다(11-13).
믿음의 결단 없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없이 환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윗은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16). 하나님께서 기적을 통해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실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길 힘'을 주실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미신이 아닙니다. 삶의 실제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요청하고 힘을 다해 진리를 따라 가려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다윗은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17). 그에게 있어 은총의 표적은 초자연적인 방법의 구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둡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힘을 다해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은혜의 표지를 달라는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깨닫고 있다면 이미 은총의 표적을 받은 것입니다. 나를 도우시고 위로해 주실 하나님이 오늘도 앞서가시며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시편 묵상(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88:1-18 ■ 기가 막힐 웅덩이 속에서도 (1) | 2024.11.12 |
---|---|
시편 87:1-7 ■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 (1) | 2024.11.11 |
시편 85:1-13 ■ 분노를 거두시고 회복시키시다 (2) | 2024.11.09 |
시편 84:1-12 ■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1) | 2024.11.08 |
시편 83:1-18 ■ 포기하지 말고 부르짖어야 (0) | 2024.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