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5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8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1). 이는 삶의 근원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으로 지음 받은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탐욕이 들어 온 이후, 인생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타락하기 전 사람에게 하나님의 명령은 보호와 풍요와 창조주와의 교제의 은혜로 여겨졌지만,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명령은 무거운 짐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것은 곧 창조주와의 교제와 풍요로운 세계로 초대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가 얻을 복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정직한 자의 후손으로서 땅에서 강성함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2). 정직함이란 도덕적인 기준의 바름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진리 되신 하나님과의 원활한 교제를 통해 선하신 뜻을 좇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은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에게 주신 가나안 땅은 약속의 산물입니다.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에서부터 지키시고, 가나안의 거민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도 앞장서 나가셔서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친히 증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후손들에게 땅의 강성함을 얻게 하신다는 것은 후손들의 길에 함께하시고 능력으로 인도하셔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겠다는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보장된 승리만큼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막연한 희생이나 노예와 같이 무조건적이고 비인격적인 복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며 사랑이 많으시며 긍휼과 자비로 백성을 지키시고 선하신 뜻을 두신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보장된 약속을 확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계명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들에게는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라고 합니다(3). 공의 없는 부와 재물은 불법한 것이며 이는 또 다른 불의와 분열을 가져올 뿐입니다. 부와 재물을 주시되 공의를 영구히 세우신다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선한 뜻을 두시고 주신 부와 재물로 인해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공의 없는 부와 재물은 오히려 후손의 인생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 되거나 분열과 파멸을 조장하는 어둠의 힘이 될 것이지만, 영구한 공의아래에 보호된 부와 재물은 후손들의 번성을 통해 열방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탐욕아래에 쌓인 부와 재물은 가족과 이웃에게 고통을 주지만, 공의아래에 쌓인 부와 재물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와 재물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계명을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즐거워한다”는 것은 “상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용한다는 것은 늘 삶 속에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텍스트로서의 말씀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실제적인 현장에서 적용되고 경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구한 공의 안에서 부와 재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또한 말씀을 지켜 행할 때에 부와 재물이 공의로운 하나님의 뜻이 그 집에 영원히 서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그의 부와 재물은 마땅히 받을만한 하나님의 복이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인정 속에서 참된 인격적 교제가 있고, 존경이 있으며 질서와 보호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시인은 여호와의 계명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4). 흑암이란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는 상태이며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계명을 기뻐하는 자는 그 가운데 빛이 일어나 갈 길을 보여주시고 소망을 갖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긍휼함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 재물을 모으는 방법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들에게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자는 받은 은혜를 탐욕으로 쓰지 않고 이웃에게 은혜로 사용하여 정의가 실현되고 있음을 증거합니다(5). 불평등과 차별과 이기심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눈을 돌릴 줄 알고 그들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주신 부와 재물이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과 같이 소외된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도구라는 것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부와 재물을 가진 사람들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들에게서 영원히 기억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가 가진 부와 재물에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그러나 넉넉한 재물로 자신만을 살찌우지 않고 정의롭고 의로워서 이웃에게 베풀고 돌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쓰는 자의 이름은 영원히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기억될 것입니다(6, 9).
인생들은 내가 넉넉해지면 그 때에 나누고 베풀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의도 정직함도 아니며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소유를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큰 소유는 더더욱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많아지면 탐욕도 커지는 법입니다. 그러기에 재물이 많아질수록 두려움과 불안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베풀고 섬길 줄 아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소유로 인한 두려움도 불안도 없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7-8).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흉한 소문에도 흔들림 없이 공의를 행하며 마음이 견고하여 탐욕으로 인해 불의를 행하지 않습니다. 부와 재물이 철옹성이 아닙니다. 결국 의인의 번성을 보며 부와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은 한탄하며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탐욕스러운 자들은 믿음이 헛된 꿈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정과 가문이 번성해 나가는 것을 보며 그것이 헛된 꿈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절대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만이 땅에서의 강성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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