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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완료)

시편 119:161-176 ■ 사랑하는 주의 말씀을 따르며

by 해원의 아침묵상 2025.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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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167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168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70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171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173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75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76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사랑하는 주의 말씀을 따르며

지금껏 말씀을 지켜 행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는 시인의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고관들은 거짓으로 시인을 모함하고 핍박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오직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161).

거짓과 술수와 음모, 그리고 핍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말씀을 향한 시인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비록 지속적인 고난과 위기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약속의 말씀을 붙든 그는 최후의 승리를 확신합니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조여 오는 대적들의 다양한 계략과 위협에도 약속을 따라 오히려 상황을 조성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담대합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선포합니다(162). 탈취물은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들이 누리는 기쁨이며 권리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이미 약속의 말씀 안에서 승리를 얻은 자가 되었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는 아직 얻지 못한 승리이지만, 약속 안에서는 이미 얻은 승리자의 모습이 되어 전리품을 앞세우고 개선하는 군사처럼 의기양양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거짓을 미워하고 싫어하며 굴복하지 않게 했습니다(163). 그가 거짓과 술수로 미혹하는 대적들의 말을 물리치고 상황에 굴복하지 않은 것은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인과 같이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면 하나님을 열심히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대적인 사탄이 던지는 미혹의 마음입니다. 모든 것이 안정되고 풍성해지면 굳이 미혹하지 않아도 스스로 타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시기는 오히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때입니다. 바쁘고 힘든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송이 꿀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시인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164). 역설적입니다. 지금 시인은 지속적이고 깊은 고난 속에서 대적들이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한다고 합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의 시기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충만히 받을 수 있는 보배롭고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불안과 두려움을 달래려는 찬양이 아닙니다. 승리의 찬양이며 확신의 선포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그에게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평안과 기쁨만이 그의 삶을 덮고 있습니다(165). 말씀을 가까이 하면 직면한 상황너머에 놓인 하나님의 뜻을 먼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멀리하면 하나님의 뜻보다는 직면한 상황에 몰입되어 근심과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인은 이처럼 말씀 속에서 생명의 확신을 얻고 담대할 수 있었기에 계명과 증거들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166-167). 그리고 자신이 말씀을 사랑한 증거가 하나님 앞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68). 이는 곧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실만큼 계명과 증거들을 따라 정직히 행하였으니, 구원해 주실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인내하지 못합니다. 말씀 속에서 기쁨도 확신도 얻지 못합니다. 결국 그러한 사람은 상황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타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로 부름 받았습니다. 직면한 상황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지쳐 쓰러져가는 인생이아니라 죽음의 순간까지도 왕 되신 하나님께 충성된 자였음을 증거할 수 있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대적에게 투항하는 부끄러운 군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승패가 정해진 싸움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대적들의 힘과 기세에 매물 된 사람은 비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를 사랑한다면 주를 위해 죽으리라는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닿고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은 자신에게로 와 깨닫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169). 그리고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닿으면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170).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시인의 간구는 자신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를 구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도에 응답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한 것입니다. 그는 약속의 말씀대로 구원하실 때에 찬송하리라고 합니다.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의 편에 서서 약속한 대로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171-172).

그러나 시인이 하나님을 향해 찬송하겠다고 한 것은 구원의 결과로 인한 보답이나 반응이 아닙니다. 그는 대적들이 가까이 와있는 상황 속에서도 주를 찬송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찬송은 은혜를 주실 때만의 찬송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에서 얻은 확신으로 인한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고백합니다(174). 고난 중에서도 붙잡아 주시는 주의 손이 말씀 속에 있고, 승리를 확신하는 찬송이 말씀 속에 있습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 절망하기보다는 구원을 약속한 주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지금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받는 우리를 잡아 이끄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지금 시인의 현실은 목자를 잃은 양과 같은 처지입니다(176). 그러나 목자는 깊은 골짜기나 험한 산지에서도 잃어버린 양을 반드시 찾아 낼 것입니다. 시인은 양처럼 방황하는 자신을 주께서 친히 찾아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말씀으로 도우시고 말씀을 잊지 않고 늘 사모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우리는 약하여 넘어지거나 탐욕으로 인해 배신하기도 하지만, 주님의 약속은 오늘도 변하지 않고 끝까지 의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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