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침묵하기로 합니다. 자신의 혀로 인해서 범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악인들의 공격과 조롱 속에서도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다짐합니다(1). 재갈은 마차를 끄는 말이, 도중에 풀을 뜯으려고 멈추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마부가 말의 입에 채우는 사슬입니다.
시인은 말로 인해 죄를 범하지 않도록 입을 닫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며,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부가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도하심을 받도록 말에 신중하겠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죄가 자신의 인생을 잠식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2). 자신이 옳다고 여기며 했던 말조차 다른 사람들에겐 상처가 되기도 하고, 큰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하나님 앞에 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지식과 경험은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선한 말을 하는 것조차 근심하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입으로 나올 모든 생각과 말을 성별하여 옳고 그름에 따라 버리고 수납할 수 있는 다림줄이 될 것입니다. 여전히 감정에 따라 분별없이 말이 나오고 있다면 아직도 내 속에서 그러한 성별의 과정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매일매일 말씀 안에서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 한 마디, 순간의 작은 생각의 조각까지도 불의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작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결국 죄의 이불을 덮고 자게 될 것입니다. 죄의 이불은 평안의 잠을 위한 것이 아닌 죽음의 덮개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는 내 자신의 죄에 대해 훨씬 관대한 편입니다. 늘 나의 죄와 죄의 결과를 대하며 ‘나의 연약함’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나의 연약함을 판단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내 입술로 연약함을 핑계 삼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내 자신도 아는 바와 같이 결국 그 연약함을 핑계 삼아 동일한 죄를 반복적으로 짓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연약함을 핑계 삼는 것은 다시 반복적으로 지을 죄를 희석시키려는 내 속의 미혹이며, 이는 교만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죄에 대하여 민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4).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지 못하면 교만해지고 반복적으로 죄를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아무리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 스스로 설 수 있다고 자신해도 결국은 하나님 앞에 한 뼘 길이만큼도 되지 않으며, 허망한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5-6). 아무리 든든히 섰다고 하는 인생도 풀의 꽃과 같고 아침의 이슬과 같습니다. 그림자가 아침에는 길게 느껴지나 정오에는 짧게 되듯이, 인생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지만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잡으려 해도 결국 잡을 수 없이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은 시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의지할 분이며 인생들이 붙잡아야 할 가장 큰 가치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인생입니다. 든든히 서려고 쫓아가는 재물이 결국 삶을 무너뜨리고 인간관계를 혼란케 하며 노년을 허무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도 인생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 땅위에서의 삶의 어떠함을 깨닫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복음을 위해 온전히 쓰임 받으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시인은 이처럼 인생의 허망함을 말하며 자신이 바라는 것은 오직 소망이 되신 하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7). 또한 하나님만이 방패가 되시고 피할 바위가 되셔서 원수의 공격에서 지켜주실 것이며 참고 견디면 반드시 그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원수에게 보응하실 것을 확신합니다(8-9).
시인이 매달릴 수 있는 곳,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 유일한 희망은 이제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호소하며 용서와 회복을 구합니다(12). 용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회개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눅15:7). 죄를 돌아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이미 활시위에서 떠난 화살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시7:12). 인생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만이 그것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깨달았기에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부르짖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시인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몸부림 쳤습니다. 하지만 결국 연약하여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허망함을 인정하고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33:3). 오늘도 여전히 내 손을 붙잡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강진 강남교회 새벽이슬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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