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13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14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15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셀라)
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17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19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20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 우리의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연단
모든 민족을 향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지키셨던 하나님을 소개하며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고 초청하였던 시인은(5), 이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신을 향해 던지는 의문 앞에 마주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인을 향해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너희들이 오히려 고통과 고난을 당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고, 그는 그러한 의문에 주저 없이 답을 합니다.
그는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서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10-12).
그 모든 환란과 고통이 “은과 같이 우리를 단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정의합니다. 단련한다는 것은 금속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일련의 정제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고난에 대하여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하므로, 연단을 통해 자신이 고귀한 믿음으로 세워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욥23:10).
또한 연단은 쾌락과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중에서 순결한 믿음의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고 연단을 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슥13:9).
그리고 그러한 모든 연단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히12:1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연단하시기 위하여 애굽을 그물로 사용하였으며, 바벨론을 그물로 사용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애굽과 바벨론의 핍박 속에서 종살이를 하였던 시간은 마치 불순물을 걸러내는 용광로와 같았으며, 허리에 강제로 짐을 달아 놓은 풀어지지 않은 쇠사슬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끌려가 종살이를 한 것은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으며,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이방민족들의 약탈과 침략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성취된 이후에도 그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광야와 가나안 땅에 정착 했을 때와 왕국을 이루었을 때에도 끊임없이 반복되어져 왔습니다.
그러한 모든 연단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주신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11-12). 그러므로 시인의 답은 명쾌합니다. 그러한 모든 시험이 있었으나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고,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다”고 합니다(12).
즉, 죽음과 같은 시련과 고통을 통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신 까닭이고, 결국에는 풍부한 곳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하나님에 대하여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사43:1-3).
인생의 지나온 모든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헤쳐 나왔던 모든 순간들이 내 힘으로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끝없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 오히려 내 믿음은 성장하였으며, 내 삶은 번성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13). 시인이 그러한 믿음의 결단을 한 것은, 불과 같은 시련 속에서 건져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했고, 그 구원하심 앞에 자기의 입술로 오직 주님만 높이고 섬길 것을 서원했기 때문입니다(14).
그러나 “내 입술이 낸 것이요”라는 시인의 고백은, 죄악 중에서 신음하던 자신의 입술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인도하심 속에 강권하신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내 입술의 고백조차도 나의 의지로 인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서원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조성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믿음이 순전하고 위대한 까닭은 그러한 서원을 자신의 시련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았으며, 이제 자발적인 제사로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15).
시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을 위하여 하신 일을 들으라”고 선포합니다(16). 이러한 시인의 선포는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벅차 자신의 마음 안에 담아두고만 있을 수 없는 감동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당한 애매한 고난에 대하여 충분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죄악을 행하지 않았고 결백하다고 생각하며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부르짖으면서도 혹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죄가 있을지 모르고 그로인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염려와 근심은 시인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감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시고,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으며, 그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인자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18-20).
하나님께서는 고통가운데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며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시인이 그러한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랑하듯이 오늘 나의 삶 속에서 그러한 크고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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